지난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선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열렸습니다. 인류 문명의 발전상은 과거 엑스포를 통해 소개돼왔는데, 이젠 새해 벽두의 CES 행사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세계 주요국 첨단기술 업체들이 앞다퉈 신기술을 선보이고, 벤처캐피털 등은 유망 기술기업 발굴에 전력합니다. 가까운 인류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기회여서 CES를 참관하는 각국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죠.
CES는 빅테크를 이끄는 리더들의 예지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확인해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CES에서 기조연설을 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피지컬 AI(Physical AI, 현실 세계 속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했다. 로봇을 위한 챗GPT의 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CES를 휩쓴 키워드가 바로 ‘피지컬 AI’입니다.
AI는 그동안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인간의 명령 프롬프트에 반응하며 일해왔습니다. 이제는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자동화 공장) 등으로 일종의 ‘몸’을 빌어 우리의 일상과 산업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피지컬 AI입니다. 올해 CES에 나타난 첨단기술의 흐름은 어떠했는지, 가까운 장래에 AI는 어떻게 발전하고 진화해갈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비서·로봇·차량까지…CES 달군 '피지컬 AI'
인간 지능 뛰어넘는 범용AI의 미래 '성큼'
1967년 가전제품 중심의 전시회로 시작한 미국 소비자가전쇼(CES)는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을 맞아 첨단기술의 세계 최고 경연장이 됐습니다. 갈수록 전자 장비화하는 자동차 기업들도 참가하면서 규모가 더욱 커졌죠. 그런데 최근엔 인공지능(AI) 기술이 무대를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X)을 넘어 인공지능 전환(AX)이 모든 산업의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업종을 막론하고 AI 기술을 도입·적용하는 기업만이 높은 성장성과 수익성을 누리게 될 겁니다.
AI, 이제 ‘몸의 전쟁’
AI의 역사는 195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본격화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2022년 말 생성형 AI인 챗GPT의 출현이 분기점이 됐다고 볼 수 있어요. 질문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결과물을 쏟아내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죠. 하지만 그런 결과물을 기초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었습니다.
지난해 CES에선 한 단계 더 진화한 AI가 나타났습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대신해주는 ‘에이전트(Agent) AI’가 그 주인공입니다. 사람이 어떤 목표를 정해주면 에이전트 AI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필요한 작업을 스스로 결정해 수행합니다. 일종의 ‘AI 비서’입니다. 작년에 가능성을 엿봤다면, 올해는 에이전트 AI를 실현한 구체적 기술과 제품을 다수 선보였습니다.
이와 함께 로봇이나 자율주행차 등과 결합해 실제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피지컬 AI’가 CES에 데뷔했습니다. 식사를 차려주고 청소와 세탁을 해주는 가사 도우미 로봇, 공장에서 사람을 도와 일을 하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등의 형태로 AI가 가정과 공장이라는 물리적 세계 속으로 들어온 겁니다. CES에서 처음 공개된 보스턴다이내믹스(현대자동차그룹의 미국 로봇 자회사)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보셨죠? 자연스럽게 걷고 행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360도 회전 가능한 관절을 지녀 사람 이상의 노동력을 발휘합니다. 2028년 미국 내 현대차 공장에 배치돼 일할 예정입니다.
AI는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차는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로 움직이는 차량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얹는 식이었다면, 앞으로는 AI를 중심에 놓고 차량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전망입니다. AI 반도체를 만드는 엔비디아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알파마요’를 공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여기에 로봇 기술이 접목되면 자율주행 배송 로봇, 차량 연계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자동 발레 주차 로봇 등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피지컬 AI의 모빌리티 버전인 셈입니다.
범용 AI로 인류 난제 해결
그렇다면 AI 기술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갈까요? 에이전트 AI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기술은 ‘범용 A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인간의 지능 또는 2 이상의 수준으로 발전한 AI를 말합니다. 지적인 노동을 반복해서 하는 것은 에이전트 AI가 잘하지만, 스스로 판단하는 인간과 같은 역할은 AGI까지 진화해야 합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 같은 기술낙관론자는 AGI가 앞으로 5년이면 개발될 수 있다고 합니다. 길게 잡아 10년 정도면 AGI가 나타나 인간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
그러면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 같은 분야에서도 생산성이 급격히 올라가 세계경제가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류가 풀지 못한 과학적 난제도 AGI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허사비스는 “AGI가 핵융합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인류는 무한정한 에너지를 확보해 대부분의 정치·사회·경제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단초를 CES에서 발견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NIE 포인트1. 디지털 전환(DX)과 인공지능 전환(AX)을 비교해보자.
2. 휴머노이드가 미래 기술에서 왜 중요한지 알아보자.
3. 범용 AI(AGI)가 몰고올 인류 문명의 변화에 대해 공부해보자.넥밴드 AI, 홈 로봇 등 한국 기술에 찬사
AI가 공장 돌리고 농작물 키우는 시대 왔다
올해 CES에는 160여 개국, 4119개 기업이 참여했습니다. 우리나라 참가 기업은 782개로 미국(1314개), 중국(915개) 다음으로 많았습니다. 참가 기업만 많은 게 아닙니다. ‘CES 혁신상’도 매년 우리나라 기업이 휩쓸고 있습니다. 올해는 총 370개 혁신상 가운데 218개(59%)를 받아 2년 연속 1위에 올랐습니다.
한국 기업 ‘최고 혁신상’ 석권
부문별로 가장 우수한 기업 1~2곳을 선정해 수여하는 ‘최고 혁신상(Best of Innovation)’도 전체 30개 중 절반인 15개를 한국 기업이 수상했습니다. 대표적으로 CT5의 ‘존 HSS1’(웨어러블 AI 인터페이스), 딥퓨전AI의 ‘RAPA’(360도 인식 솔루션), 두산로보틱스의 ‘스캔&고’(자율이동 로봇)를 들 수 있습니다.
존 HSS1의 경우, 안경 형태인 기존의 AI 웨어러블 기기를 목과 귀에 거는 넥밴드 형태로 개발한 겁니다. 예를 들어, 해외 여행지 음식점 앞에서 메뉴판을 보며 “이 메뉴를 영어로 읽어줘”라고 말하면 기기에 장착된 카메라가 메뉴판을 인식하고 음성으로 안내합니다. 만약 요리하는 중이라면 손이 자유롭지 못한데요, 이때 “10분 타이머 설정해줘”와 같은 명령을 내릴 수도 있어요. 안경 형태의 경우, 발열 문제나 무게로 인해 코가 짓눌리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를 깔끔하게 해결했죠.
가사 로봇, 조교 로봇 …
한국 대표 글로벌 기업도 피지컬 AI를 대거 선보였습니다. LG전자는 홈 로봇 ‘LG 클로이드(CLOiD)’를 처음 공개하고 시연했어요. 머리와 두 팔, 다섯 개 손가락 등은 사람과 비슷하지만 하체는 바퀴를 달아 집 안에서 일하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이 로봇엔 음성 기반 생성형 AI가 탑재돼 사람의 언어와 표정으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에 바쁘다 보면 집안일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홈 로봇이 ‘딱’입니다. 미처 못한 빨랫거리를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건조가 끝나면 개는 작업까지 합니다. 식기세척기에 자기로 만든 식기를 집어넣고 뺄 때도 깨지지 않게 손의 압력을 잘 조절합니다. LG는 ‘가사 노동의 자동화, 해방’을 제안하며 이 로봇을 선보였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13.4인치의 동그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얼굴처럼 만든 로봇 ‘AI OLED 봇’을 출품했습니다. 패널을 통해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대학에서 ‘로봇 조교’로 활용 가능하다고 합니다. 삼성전자는 ‘AI 일상 동반자’라는 비전을 내걸고 삼성전자의 모든 전자기기와 서비스를 AI로 연결하는 ‘AI 리빙 플랫폼’을 시연했습니다. TV와 가전기기, 모바일 제품끼리 AI로 연결되는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농업까지 파고드는 AI
피지컬 AI는 공장 등 산업 현장에서 활용도가 높습니다. 현대차의 아틀라스를 포함해 스웨덴 기업이 개발한 이온(AEON) 등 산업용 휴머노이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배터리 잔량이 부족해지면 스스로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갈아 끼웁니다. 고장만 나지 않으면 사람 손이 필요 없습니다. 엔비디아는 수천 대의 로봇과 센서를 지능형 네트워크로 묶는 아이작 플랫폼을 처음 선보였습니다. AI가 재고 파악, 자율트럭 호출, 로봇에 상차(차에 물건을 싣는 일) 업무 배정 등의 명령을 이 플랫폼을 통해 내리면 공장이 마치 자율주행 공장처럼 돌아갑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마지막 장면처럼 사람 하나 없이 공장이 돌아가는 세상이 다가왔습니다.
AI와는 관계없을 것 같은 농업에서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조량과 강수량, 토질 등의 데이터를 연계한 AI 농업기술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있어요. 미국 존 디어가 그 예입니다. 이 회사의 농업용 트랙터들이 작업 속도, 남은 연료량, 엔진 사용률 등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기록하면 이를 AI가 분석하고, 토양 습도, 영양 상태, 작물의 성장 정보 등을 취합해 가장 효과적으로 농사짓는 방법을 제안합니다.NIE 포인트1. 우리나라 기업이 CES 혁신상을 휩쓰는 원인은 뭘까?
2. 산업 현장에서 로봇이 인력을 대체하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3. 피지컬 AI는 세계경제의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까?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