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아바도 삼촌은 ‘음악에서 제일 중요한 건 듣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음악을 즐겨 연습하던 가문 문화에서 영향을 받아서였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듣는 겁니다. 이러한 가문의 유산은 제게도 남아 있습니다.”
로베르토 아바도가 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이끌 악단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올해부터 3년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는다. 아바도는 뮌헨 방송교향악단, 소피아 여왕 예술궁전, 베르디 페스티벌 등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던 1954년생 이탈리아인 지휘자다.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등 세계 정상급 오페라하우스에서 활약해 왔다. 지금은 이탈리아 볼로냐 시립극장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겸하고 있다.
협연자 없이 이탈리아 작곡가로 정면승부
아바도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조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바도 가문은 밀라노 음악계를 주름잡던 음악 명가다. 로베르토 아바도의 할아버지였던 미켈란젤로는 밀라노 음악원 원장을 맡았던 바이올리니스트, 친할머니는 당대 유명한 음악 교사 겸 작가였다. 지휘 거장이었던 삼촌과의 음악 스타일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로베르토 아바도는 “제 자신에 대해 평가할 얘기가 나오면 수줍음을 느낀다”며 “자찬을 하지 않고 수줍음을 타는 건 우리 가문의 내력”이라고 말했다.
로베르토 아바도는 2023년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를 지휘하며 국립심포니와 처음 만났다. 그는 “이 악단의 첫 반응이 대단히 긍정적이었다”며 “벨리니의 음악을 다룰 땐 프레이징의 유연성이 굉장히 중요한데 제가 벨리니 오페라에서 갖고 있던 생각들을 이 악단이 바로 구현해 굉장히 놀랐다”고 회상했다. 음악감독 제안을 받은 건 지난해 3월 베르디 ‘레퀴엠’ 공연으로 국립심포니와 두 번째로 합을 맞춰보고 나서다. “유럽에선 몇 년 전부터 한국을 향한 열기가 있었습니다. 영화, 팝 음악, 록 음악, 패션, 미식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에서도 그랬죠. 전 세계 악단 어디를 가나 한국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아바도는 오는 11일 예술의전당에서 취임연주회 ‘차갑고도 뜨거운’으로 올해 한국 관객들과 처음 만난다. 레스피기, 베르디, 로시니 등 고국 작곡가의 작품으로만 프로그램을 짰다. 협연자 없이 오롯이 악단 연주에만 집중해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기로 했다. “신년음악회에서 비엔나 풍으로 요한 스트라우스의 음악을 하는 전형적인 콘서트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년이니 밝고 톡톡 쏘고 경쾌한 면이 있어야 할 것이고, 막 한 해가 끝났으니 약간의 우울한 정서도 담았으면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새해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비엔나 풍을 빼니 로시니가 남더라고요.”
“오페라의 복잡성과 기악의 엄격성 겸비해야”
아바도가 국립심포니에서 둘 주안점은 세 가지다. 첫째는 낭만주의 작곡가인 멘델스존과 슈만, 둘째는 괴테와 음악, 셋째는 셰익스피어와 음악이다. 낭만주의 음악을 탐구하되 문학과 음악 사이의 연결고리를 조명하겠다는 전략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도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 때 셰익스피어와 같은 문학 작품을 축으로 삼아 레퍼토리를 짜곤 했다. 로베르토 아바도는 “너무 경직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하면서 (관객들이)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음악 훈련과 관련된 부분은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바도는 “과거 음악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음악을 연주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국립심포니는 상주작곡가로 미국 저작권협회에서 젊은 작곡가상을 두 차례나 탄 한국계 미국인 그레이스 앤 리를 선정했다. 서양 음악에 국악을 접목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작곡가다. 오는 4월 아바도는 이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기로 했다. 아바도는 “아바도 가문은 동시대 음악가에 대한 관심을 늘 갖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여태껏 밝힌 적이 없던 가문의 일화를 소개했다.
“클라우디오 삼촌이 7~8살이던 1940년대 초, 파시즘 시기죠. 그때 삼촌과 가브리엔느(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동생)가 바르토크 음악을 좋아했답니다. 그래서 이 어린아이들이 벽에 분필로 ‘비바 바르토크(바르톡 만세)’라고 낙서했다가 어느 날 경찰들이 집에 닥쳐 ‘바르토크가 누구냐’고 물었다고 해요.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이 아닌가 의심해서 경찰이 찾아왔던 거죠(웃음).”
그는 오페라에 강한 이탈리아 출신답게 기악과 오페라 양쪽에 고른 관심을 보이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음악가로서 두 장르를 모두 접하는 건 중요합니다. 모차르트도 생애는 짧았지만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극적인 직관을 발휘해 폭넓게 작곡을 했습니다. 두 분야 모두가 서로 대화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성악곡과 함께 연주하느라 오페라에서 존재하는 복잡성을 구현해낼 수 있는 악단은 기악도 잘 해낼 겁니다. 반대로 기악에서 필요한 엄격성을 오페라 음악으로도 가져올 수 있어야겠죠. 국립심포니는 이 양면성을 보존하고 키워나가야 합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