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모임에서 마주친 ‘퓔리니 몽라셰’[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입력 2026-01-12 20:55
수정 2026-01-14 13:20
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61>



지난 연말 경기도 과천 스페인음식 전문점에서 송년회 겸 와인모임을 가졌다. 유명 종합·전문병원 이사장 등 의료관계자 몇 분과 함께했다. 와인은 BYOB(Bring Your Own Bottle) 방식으로 각자 가져오기로 의견을 모으고 SNS 대화방에 리스트를 올렸다.

평소 와인을 좋아하고 몇 차례 해외 와이너리 체험이 있을 정도로 실력이 상당한 병원장들은 과연 어떤 와인을 골랐을까. ‘12월 와인’의 맛과 향을 순서대로 소개한다. 현장에서 주문한 스파클링과 중복 브랜드 와인은 제외했다.

먼저 화이트 와인을 가져온 병원장은 “괜찮은 와인을 한 병 보관하고 있다”며 사전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당일 그가 내놓은 와인은 샤도네이의 최고봉인 퓔리니 몽라셰. 300년 역사의 도멘 르플레이브가 ‘레 콩베트 포도밭’에서 생산한 프리미에 크뤼(2018)였다.

첫 모금에서 깔끔하면서도 강렬한 향과 맛을 선보이며 1등급 포도밭의 특성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높은 보디감과 산도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화이트 와인이지만 10년 이상 장기 숙성 가능성을 증명하는 듯했다. 신세계 와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놀랍게도 참석자 모두 몽라셰 와인의 명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각자 얽힌 사연까지 이야기할 정도였다. 다만 지역 이름과 등급 구분에서 약간 혼란이 있어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다.

프랑스 부르고뉴 코트 드 본 남쪽에는 ‘퓔리니(Puligny)’와 ‘샤사뉴(Chassagne)’라는 두 마을이 있다. 혼란은 부르고뉴 최고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그랑 크뤼 등급의 ‘몽라셰(Montrachet) 포도밭’이 두 마을의 경계에 걸쳐 있다는 점 때문에 발생한다.

두 마을 모두 이 전설적인 포도밭 명성에 기대어 마을 이름 뒤에 ‘몽라셰’를 붙였다(퓔리니 몽라셰, 샤사뉴 몽라셰). 즉 몽라셰라는 단어가 최고급 포도밭이자 행정구역(마을) 이름으로 동시에 쓰이면서 소비자들의 혼란을 더욱 부추긴다.

다행히 라벨을 보면 쉽게 구별된다. 진짜 그랑 크뤼 와인은 라벨에 ‘Montrachet’라는 밭 이름만 크게 적혀 있는 반면, 마을 단위 와인은 ‘Puligny-Montrachet’처럼 마을 이름 전체가 표기된다. ‘와인이 어려운 것은 부르고뉴 때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다나 에스테이트의 ‘바소 소비뇽 블랑’을 마셨다. 이희상 전 동아원그룹 회장이 미국 나파 밸리에서 만든 와인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한 맛과 향이 쉽게 잡혔다. 동일한 신세계 와인이면서도 강한 풀 향이 특징인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났다.

최근 이 와이너리에서 만든 ‘허시 빈야드 소비뇽 블랑’이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와인대회(BWW) 화이트 와인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 회장은 “나파 밸리 화이트 와인의 새 장을 열었다”고 소식을 전하며 칼럼 게재를 제안했다.

끝으로 마신 레드 와인은 실버 오크,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전형적인 미국 와인으로, 진한 루비 컬러에 기대감이 높아졌다. 실제 첫 모금에서 잘 익은 열대 과일과 초콜릿향을 잡을 수 있었다. 3~4년에 달하는 숙성 기간 때문이다.

보통 와이너리에서는 값비싼 ‘프렌치 오크통 사용’을 강조한다. 그러나 실버 오크는 ‘100% 미국산 오크통 사용’을 밝히며 정면승부에 나서고 있는 것. 그 때문인지 높은 산도와 보디감이 섞이면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두 번째 잔에서는 삼나무 향을 잡을 수 있었다.

‘나쁜 와인을 마시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명언이 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해를 맞으며 마신 와인이 모두 훌륭해 마음 편했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목이 만든 품격 높은 매력이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juju433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