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묻고 싶었다. 오르세 미술관 5층,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몇십명의 사람들에게. 지금 진짜 감동하고 계신가요? 예술을 향유하고 계신가요? 간신히 인파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밀고 나가 아를의 별빛 아래 두 사람을 마주하긴 했으나 뒤에서 계속 밀치는 통에 방금 뭐가 지나갔냐 그 수준이었다. 나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오르세에서, 책에서나 봤던 즐비한 명화들 앞에서, 진심으로 설레고 기뻐하며 만끽한 것일까. 거기 있던 사람들 모두 제대로 향유한 것 맞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도 묻고 싶었다. 메트는 너무 거대한 규모로 여러 번 길을 잃었다. 하루 만에 보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 선택과 집중으로 다니는데도, 만보쯤 걷자 앉을 데만 눈에 들어왔다. 네시간쯤 지나자 아름다운 예술이고 뭐고 내 다리 내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유명한 미술관 좀 와보겠다고 열몇시간을 비행기 타고 날아와서 그 현장에 있는데도 딱 네시간 만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예술 향유는 하지 못하겠구나 씁쓸한 진실을 알아챘달까.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들도 예상과 달리 하나같이 피로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왠지 모를 배신감도 느꼈다. 패트릭 브링리처럼 그윽한 눈으로 사유하는 경비원을 바란 건 아니지만, 책은 가끔 잘못된 환상을 심는다.
다행히 나는 퍽 이기적 향유자라 몸과 마음이 힘든 순간, 관람을 거기서 딱 멈췄다. 쇠공을 매단 것 같은 다리를 질질 끌며 미술관 안 카페에 앉았다. 차가운 오렌지 주스로 정신을 깨우고, 그때부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 이야기도 듣지 않으며, 그냥 멍~ 과부하 된 눈과 마음을 쉰다. 예술을 제대로 향유하면 이렇게 피로할 일이 없건만, 금방 깨닫는다. 시간에 쫓기고 사람에 치이며 다니는 건 진짜 향유가 아니구나. 그래도 고흐를 봤으니 그게 어디야 위로받기 위해 사람들은 다 거기 몰려 있었던 건가.
그냥 보는 것과 응시하는 것은 다르다. 슥 쳐다보고 지나가는 것과 가만히 멈추어 누리는 것은 다르다. 그 시간의 품질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그림 앞에 어떤 질문을 갖고 있는가. 그 질문에 어떻게 응답하는가까지가 진짜 향유의 과정이다. 그러려면 조건이 있다. 시간의 여유와 공간의 유연. 넓어진 마음이어야 느긋하게 예술이 스며든다. 그러므로 처음 몇 번은 혼자 다니는 게 좋고, 너무 먼 데보다는 가까운 데가 좋고, 한 점을 느리게 보는 게 좋고, 명화보다 동시대 미술이 좋다. 그런 전시에는 대체로 사람도 없어서 향유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의 탐색은 먼 데 가지 않아도 여행 효과를 준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나 홀로 존재의 고독은 내면의 힘을 길러준다. 요즘 시대를 반영한 현대 미술은 탁월한 통찰력으로 내 마음을 더 잘 투영해준다. 그래도, 전시하면 인상주의 명화지! 얼리버드 공구로 친구들이랑 같이 가야지! 유명하다니 멀어도 내가 한번 봐줘야지! 대체로 우리는 이렇게 유행처럼 예술을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리 보는 게 맞나 갸우뚱하면서 굿즈 몇 개 사 오는 걸로 만족하면서. 물론 그리 해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고.
하지만 미술관을 그렇게만 쓰기에는 너무 아깝다. 한 발 더 본질로 깊이 들어가 보는 것, 능동적 향유의 주체로 나아가 보는 것, 그게 필요한 시점이 온다. 생경한 분위기에 나를 놓는 것, 새로운 관점에 나를 두는 것, 가슴 뛰는 경험에 나를 던지는 것, 이 모든 것들을 한 번에 할 수 있으므로. 바로 그 전시, 내가 좋아하는 그림 한 점 앞에서. 전시회에서 적극적으로 맘에 들어온 한 점을 고르면 내 상태를 알게 된다. 내내 허허실실했는데 마음은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이기도 하고, 맑음인 줄 알았는데 터너 폭풍우 치는 바다에 서 있기도 하지.
그래서 미술관에 가는 일은, 놓치고 있는 나를 만나러 가는 일이다. 알아채기 쉽지 않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먼 나라 북적북적한 유명한 미술관에서는 잘하지 못한다. 대신 서울시립미술관에 가면 해볼 수 있다. 국현보다 규모는 작지만, 여러 전시들이 알차게 구성되어 다리 아프지 않고 보고 누리기에 좋다. 지금 <최재은: 약속>전과 <근접한 세계>전, <천경자 상설전> 등이 열리고 있는데 각각 다 너무 재밌다.
특히 <약속> 전시는 환경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하는데, 전시장 중앙에 '숨을 배우는 돌' 작품에는 실제 스태프가 물을 주며 보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벽에 뚫린 아주 작은 구멍 하나, 딱히 설명도 없어서 거의 다 그냥 지나가 버리는데, 거기엔... 비밀! 꼭 직접 가서 보시길. 멸종되거나 희귀종들의 식물들과 그 이름이 빼곡히 적힌 전시실에선 어쩐지 애틋함이 밀려왔다. 사운드로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명명해주는데, 식물 소개도 일인칭으로 되어 있어서, 보다 보면 고유한 존재인 하나의 식물과 내가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어느새, 불안한 내 마음은 가만해지고 평안해져 있다. 오늘 내가 고른 작품엔 지금 나의 마음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네. 끄덕끄덕, 메타인지의 시간. 미술관은 이렇게 활용하면 된다. 단지 남들이 다 가니 가는 곳이 아니라, 나의 성장 시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추운 날엔 특히 더 좋다. 따뜻하고 드넓은 공간에서 여유 있는 산책과 향유, 한 번에 다 된다. 오르세보다, 메트보다 우리에겐 가까운 미술관이 최고입니다.
임지영 예술 칼럼니스트?(주)즐거운예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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