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07일 09:3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속가능금융은 더 이상 ‘착한 투자’나 이미지 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지속가능성은 이미 자본의 흐름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특히 유럽 금융시장은 이를 금융시스템 전반에 구조적으로 통합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지속가능금융은 금융의 안정성과 중장기 수익성을 동시에 관리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유럽의 지속가능금융이 주목받는 이유는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제도와 시장 규칙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택소노미를 통해 녹색 경제활동을 정의하고, 이에 부합하는 정보 공개를 규제로 의무화했다. 이 분류 체계를 바탕으로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제(SFDR)와 기업지속가능성공시지침(CSRD)이 도입되면서, 지속가능성은 신용과 투자 판단에 직접 반영되는 자본배분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금융상품은 지속가능성 수준에 따라 명확히 구분되고, 기업은 재무정보와 동일한 수준의 신뢰성과 비교 가능성을 갖춘 지속가능성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진전과 함께 지속가능금융의 수익성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ESG나 지속가능투자가 수익률을 희생해야 하는 선택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3년간 유럽 자본시장에서 축적된 데이터는 이러한 통념에 점차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여러 분석에 따르면 유럽에서 운용된 지속가능펀드는 전통적 펀드와 비교해 대체로 유사한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일부 국면에서는 오히려 더 나은 성과를 보였다.
특히 금리 인상과 에너지 가격 변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동시에 확대된 시기에도 지속가능펀드는 상대적으로 변동성 조정 수익률 측면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이는 지속가능펀드가 단순히 특정 테마에 투자한 결과라기보다, 환경·사회·지배구조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을 선별함으로써 구조적인 리스크 완화 효과를 거둔 결과로 해석된다. 이로 인해 지속가능투자는 더 이상 가치 지향적 투자자의 선택에 그치지 않고, 유럽 연기금과 기관투자가의 표준적 포트폴리오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금융기관의 역할도 이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유럽의 주요 금융기관들은 지속가능금융을 더 이상 별도의 상품이나 캠페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ESG와 전환 요소는 신용정책, 포트폴리오 구성, 자본배분 전략 전반에 통합돼 있다. ING그룹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산업별 전환 시나리오를 내부 기준으로 설정하고, 기업의 전환 계획과 이행 가능성을 신용평가의 핵심 요소로 반영하고 있다. 금융은 자금 공급자를 넘어, 전환의 속도와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유럽의 변화는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점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지역기반 금융지주사가 추진 중인 해상풍력 사업 참여는 국내 지속가능금융과 전환금융이 보다 실질적인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사업은 단일 개발사 중심의 전통적 프로젝트 금융을 넘어, 복수의 사업 주체와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구조 속에서 금융이 리스크를 분산·조정하며 프로젝트의 성사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설계되고 있다.
특히 해상풍력과 같은 대규모 재생에너지 인프라는 장기간의 개발 기간과 정책, 기술, 시장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영역이다. 이러한 사업에 금융기관이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친환경 자산에 투자한다는 의미를 넘어, 장기적 전환 리스크를 평가하고 이를 감내할 수 있는 금융 구조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전환금융의 성격을 갖는다. 이 사례는 국내 금융기관이 지속가능금융을 선언적 목표가 아닌, 실제 자본배분과 금융 구조 설계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여전히 몇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지속가능금융에 대한 관심과 제도 논의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나, 실무에서는 공시 대응과 녹색금융 확대에 상대적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시 체계는 글로벌 기준에 근접하고 있지만, 해당 정보가 실제로 신용과 투자 의사결정에 얼마나 깊이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 또한 제조업·에너지·운송 등 우리 경제의 핵심 산업을 대상으로 한 전환금융 체계는 아직 본격적으로 정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럽의 경험과 국내 사례가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지속가능금융은 비용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와 중장기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금융이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자본배분은 수익률을 희생하는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환경에서 금융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제 우리 금융시장도 지속가능금융을 사회적 책임이나 평판 관리의 영역에 머무르게 할 것이 아니라, 자본배분 전략과 리스크 관리의 핵심 축으로 재정의해야 할 시점이다. 녹색금융을 넘어 전환금융에 대한 공통의 기준과 언어를 정립하고, 금융이 경제 전환의 설계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지속가능금융은 규제가 아니라, 미래 금융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