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구글·엔비디아와 삼각동맹…"피지컬 AI 최강자 될 것"

입력 2026-01-06 17:59
수정 2026-01-07 10:28
5일(현지시간) 현대자동차그룹의 ‘CES 2026 미디어 데이’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컨벤션센터. 성인 남성 키(170㎝)만 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테스트 모델이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오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틀라스는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더니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시늉도 하고, 팔을 뻗어 선반 위 물건을 꺼내는 동작도 시연했다. 무대 오른편으로 걸어간 아틀라스는 두 손으로 무대 끝을 가리켰다. 그러자 키가 20㎝ 더 큰 푸른색 양산 모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자동차는 한 대도 없었다. 로보틱스를 중심으로 하는 ‘피지컬 AI’ 제조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현대차그룹의 미래 비전이 반영된 무대 연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양질의 현장 데이터가 무기산업 현장에 투입할 로봇의 성능을 끌어올리려면 양질의 제조 현장 데이터는 필수다. 하지만 인공지능(AI) 기술을 이끌고 있는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엔 제조 공장이 없다. 현대차그룹이 피지컬 AI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완성차(현대차·기아)부터 철강(현대제철), 부품(현대모비스), 방산·철도(현대로템)까지 다양한 제조 현장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하면 최강의 피지컬 AI 제조기업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단단한 글로벌 공급망과 제조 전문성도 빅테크와 차별화되는 현대차그룹만의 강점이다. ‘양질의 데이터 확보→학습→제조’로 이어지는 피지컬 AI 밸류체인을 모두 갖췄다는 얘기다.

아틀라스는 투입 시점만 보면 다른 기업에 비해 후발주자다. BMW는 2024년 8월 미국 스파르탄버그 공장에 미국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AI의 ‘피규어 02’를 투입했고, 중국 유니트리로보틱스는 지난해 초부터 휴머노이드를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고 있다. 테슬라 옵티머스는 올 상반기 양산을 예고했다. 다만 유니트리와 옵티머스 등이 들 수 있는 무게가 최대 20~30㎏에 불과한 반면 아틀라스는 50㎏까지 운반할 수 있다. 로버트 플레이터 보스턴다이내믹스 최고경영자(CEO)는 “아틀라스는 경쟁사 대비 많은 차별화된 요소를 갖고 있다”며 “보스턴다이내믹스는 4족 보행 로봇 ‘스폿’ 등을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는 만큼 후발주자가 아니라 오히려 앞서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제조 현장에서 쏟아져나오는 방대한 데이터를 AI로 학습시켜 로봇을 개발한 뒤 여러 기업의 공장에 투입해 다시 데이터를 고도화할 계획”이라며 “축적한 데이터를 자율주행 기술에도 이식해 테슬라, 샤오펑 등 자율주행 선두 업체와의 격차를 좁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엔비디아·구글과 ‘로봇 동맹’현대차그룹은 데이터 학습 속도를 끌어올리는 게 피지컬 AI 전략의 핵심이라고 보고, 연내 미국에 로봇 전용 훈련 거점인 ‘로봇 메타플랜트 응용 센터’(RMAC)를 열기로 했다. RMAC에서 얻은 가상 데이터와 미국 조지아에 있는 공장에서 수집한 실제 데이터를 결합해 데이터 질을 높일 계획이다.

기술 고도화를 위해 글로벌 테크기업들과 협력도 강화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월 엔비디아와 맺은 협력 분야를 데이터센터에서 로봇으로 넓히기로 했다. 구글 딥마인드와도 협력한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한 로봇 AI 파운데이션 모델 ‘제미나이 로보틱스’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로봇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제조·제어 기술에 구글의 고도화된 인지·추론 능력을 이식한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통해 로봇이 인간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복잡한 도구를 다루는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업계에선 하드웨어(현대차·보스턴다이내믹스), AI 칩(엔비디아), AI 모델(구글 딥마인드)이 결합한 이번 협업을 두고 ‘최강의 드림팀’으로 평가하고 있다. 플레이터 CEO는 이날 “엔비디아, 구글과 협업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날 것”이라며 “앞으로 고품질 제품을 저가에 출시하겠다”고 말했다. ◇ ‘로봇 플랫폼 기업’으로 확장현대차그룹은 단순 제조를 포함해 ‘로봇 서비스 생태계’를 판매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2028년까지 연간 3만 대 규모 로봇 양산 체제를 구축해 다른 업체에서 위탁받아 생산하는 ‘로봇 파운드리 공장’을 조성한다. 고객이 로봇을 구독 형태로 이용하는 서비스도 도입한다. 실시간 무선 업데이트와 원격 유지보수로 비용 부담을 낮추고 진입 장벽을 허물겠다는 전략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국내에 투자하는 125조2000억원 중 50조5000억원을 AI, 로보틱스 등 미래 신산업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라스베이거스=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