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으로 멈춘 축구 인생…보호대 하나로 연매출 20억 '잭팟' [권용훈의 직업불만족(族)]

입력 2026-01-17 06:00
수정 2026-01-17 07:43



발목 인대 하나가 한 축구선수의 인생을 바꿨다. 13세부터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을 오가며 9년간 축구 유학을 한 이준혁 엘초이스 대표(27)는 21세가 되던 해,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훈련 도중 한쪽 발목 인대가 완전히 파열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재활을 거쳐 다시 도전하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귀국을 사흘 앞두고 소속 에이전트 회사가 파산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그는 그렇게 선수 생활을 접었다.

이 대표는 그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결정”이라고 회상한다. 10대 전부를 축구에 쏟아부은 뒤 맞닥뜨린 강제 은퇴였다. 긴 좌절의 시간을 거치며 그의 고민은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왜 이렇게 많은 선수들, 특히 유소년과 아마추어 선수들이 예방 가능한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 하는가였다. 그는 자신의 부상이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선수 시절의 경험은 이후 그의 선택을 바꿨다.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에서는 유소년 선수들조차 훈련 전후 테이핑을 습관처럼 했지만, 한국에는 부상 예방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시스템과 문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부상이 발생한 뒤 치료에만 집중하는 구조'를 문제로 봤고, 예방을 일상화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은 발목 보호대 개발로 이어졌고, 그는 현재 창업가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Q. 지금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소개하고 싶습니까.
A. 축구를 너무 좋아했지만, 부상으로 꿈을 완주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헛되게 두지 않으려고 선택을 바꾼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로는 실패했지만,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선수 생활이 끝났다는 걸 언제 실감했나요.
A. 스페인에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훈련 중에 발목 인대가 완전히 파열됐을 때입니다. 재활을 하면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고 한국에 왔는데, 스페인으로 다시 가기 3일 전에 에이전트 회사가 파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내 커리어는 여기까지구나’라고 느꼈습니다.

Q. 그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했던 순간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A.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10대 전부를 축구에 바쳤는데, 한순간에 포기해야 했으니까요. 누가 대신 결정해 준 것도 아니고, 제가 제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고통을 다른 선수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오래 남았습니다.

Q. 그 마음이 창업으로 이어졌나요.
A. 그렇습니다. 선수 시절을 돌아보면, 발목이 어떤 동작에서 꺾이는지, 테이핑이 왜 효과적인지 너무 잘 압니다. 그런데 왜 일반 선수들은 테이핑을 못 할까, 왜 보호대를 안 쓸까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답은 불편함과 인식의 문제였습니다.



Q. 선수시절에도 잘 안되면 창업이나 다른 길을 염두해두고 있었나요.
A. 그럴 여유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선수생활에만 집중했으니까요. 부상을 당하고 난 뒤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을 읽었는데 돈이 안드는 사업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소셜 네트워크'라는 마크 저커버그 일대기 영화를 보고 SNS 마케팅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주언규씨가 운영했던 신사임당 유튜브 채널도 접했고, 온라인 쇼핑몰 사업에 도전하게 됐죠. 처음 도전했던건 바람막이였어요. 사이즈 별로 10개씩 방에 채워두면서 팔았었죠.(웃음) 보호대도 팔았는데 불편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서 '내가 다시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발단이 됐죠.

Q. 울산에서 창업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울산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여기서 시작했죠. 서울이나 부산에 가볼지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울산이 전국적으로 축구시스템이 잘 갖춰있다는 걸 보고 여기에 남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아마추어 리그도 울산만큼 잘 운영되는 곳이 없거든요.

Q. 제품 개발 과정은 어땠습니까.
A. 솔직히 말하면 미친 짓이었습니다. 1년 동안 18번의 샘플을 만들었고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했습니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과 대출까지 받아 수천만원을 쏟아부었습니다. 테이핑의 원리(발목 관절을 ‘8자 형태’로 감싸 회전과 전방 쏠림을 동시에 잡아주는 구조)를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고, 얇으면서도 내구성이 있는 원단을 찾는 과정도 쉽지 않았고요. 적당히 만들지 타협하고 싶은 순간도 정말 많았습니다.

Q.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A. 제가 생각하던 발목 보호대가 완성되면 정말 많은 선수들의 발목 부상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저는 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압니다. 부상 하나가 커리어 전체를 어떻게 바꿔놓는지요.

특히 한국은 인조잔디 축구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잔디가 짧고 단단한 환경이 대부분입니다. 그만큼 발목에 가해지는 부담이 크고, 프로뿐 아니라 아마추어와 동호인 선수들까지 부상 위험에 더 쉽게 노출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Q. 제품을 완성한 뒤에도 고비가 있었다고요.
A. 제품 최종 샘플을 통과시키고, 구매 의사를 보인 고객사를 모았는데 생산할 돈이 없었습니다. 개발에 모든 자금을 써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때가 가장 절망적이었습니다. 주변에 도움을 받아서 겨우 자본을 마련해 생산했고, 그게 첫 출시로 이어졌습니다.

Q. 성과는 어땠습니까.
A. 첫 출시 이후 8차례 완판을 했고, 누적 판매량은 2만5000개를 넘겼습니다. 현재 월평균 매출은 2억원 수준입니다. 혼자 시작했지만 지금은 정직원 4명과 함께 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또 전체 수익의 약 5%는 축구 관련 기부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Q.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A. 고맙다는 말 한마디였습니다. 고객들에게 “이런 제품이 정말 필요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장문의 편지와 메시지를 100통 가까이 받았습니다. 발목 부상을 크게 당할 뻔했는데 피해를 줄였다는 이야기, 보호대 덕분에 심리적으로 편해졌다는 후기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Q. 프로 선수들의 반응도 있었다고요.
A. 전 국가대표 선수부터 프로 선수들까지 직접 연락을 주셨습니다. 선수 시절 발목 테이핑 했던 느낌과 가장 비슷하다고 말해주셨을 때, 그동안의 과정이 보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Q. 한국 축구에서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십니까.
A. 시스템과 인식입니다. 유소년부터 프로까지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부상 예방 교육이 없습니다. 부상은 운이 나빠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하는 문화와 가벼운 인식도 문제입니다. 부상 예방은 꼭 가르쳐야 하고, 양치하고 세수하는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지켜야합니다. 그리고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능 있는 선수들이 저와 같은 이유로 계속 사라질 겁니다.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1차적으로는 축구 전문 보호대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것이고, 그 다음은 축구 전문 브랜드, 최종적으로는 축구 전문 커뮤니티와 플랫폼입니다. 특히 유소년 축구 학부모들이 겪는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부상 예방과 정보의 투명화가 함께 가야 한국 축구가 건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Q. 예비 창업자에게 조언을 한다면.
A. 창업 교육에 돈을 쓰기보다, 직원 수 5명 미만의 작은 회사에서 1~2년 정도 직접 일해보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그런 조직에서는 기획부터 생산, 영업, 고객 대응까지 전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창업을 준비하는 데 이보다 현실적인 교육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고객 타깃을 과감하게 줄이는 것입니다. 타깃을 좁히면 잠재 고객을 놓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오히려 반대입니다. 타깃이 넓으면 다른 업체와 구분되지 않고, 결국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명확한 타깃을 대상으로 ‘팬’을 만들고, 그 기반 위에서 점차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축구나 골프 레슨도 마찬가지입니다. 슈팅만 정확하게 알려주는 레슨, 어프로치나 퍼팅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레슨처럼 한 가지에 집중할수록 시장에서의 정체성은 더 분명해집니다.

Q. 큰 실패를 경험했거나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나는게 아닙니다. 다만 방향이 바뀔 뿐이죠. 저는 축구선수로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 경험 덕분에 축구와 관련된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좋아했던 분야를 끝까지 붙잡고 다른 방식으로라도 꾸준하게 이어간다면, 또다른 기회가 반드시 생깁니다.

#직업불만족(族) 편집자주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했지만 매일 퇴사를 고민하는 30대 청년,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제2의 삶을 개척한 40대 가장,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70대 청소 노동자까지. '직업불만족(族)'은 직업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목소리를 기록합니다. 당신의 평범한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깊은 위로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일하며 살아가는 세상 속 모든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하단 구독 버튼을 눌러주시면 직접 보고 들은 현직자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