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전세 사기' 잔혹사 끝내려면

입력 2026-01-05 17:33
수정 2026-01-06 00:26
“전세 사기는 구제받고 보이스피싱, 다단계 등 다른 민생 사기는 (구제) 안 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전세 사기 문제 해법을 묻는 기자에게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던진 반문이다. 선구제 후회수는 공공이 보증금 반환 채권을 우선 매입해 전세 사기 피해자를 구제한 뒤 해당 주택을 경·공매에 부쳐 비용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업무보고에서 공식적으로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세 사기는 임대인(집주인)이 임차인(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를 고의로 저버리거나 복잡한 권리관계를 악용해 보증금을 편취하는 범죄다. 2023년 6월 ‘전세사기피해자법’ 시행 이후 지난해 말까지 정부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은 피해 사례는 3만5909건으로 집계됐다. 매달 1000명 가까운 피해자가 추가되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으면 정부로부터 주거와 금융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지원이 직접 손해분을 보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선구제 후회수 주장의 배경이다.

‘주거권을 박탈당한 피해자를 돕는다’는 명분에도 정부의 고민은 깊다.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칫 수조원에 달하는 재정이 고스란히 국가부채로 남을 수 있어서다. 국토교통부는 과거 전세 사기 피해자를 약 3만6000명으로 가정할 경우 주택 매입 등에 4조20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지난해까지 선구제 후회수 방식이 실무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이유다. 보이스피싱 등 다른 민생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하는 숙제다.

이 같은 논쟁이 사태의 본질이 아닌 ‘사후약방문’식 처방에 방점이 찍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전세 제도의 구조적 결함과 공인중개사 등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 부재로 전세 사기 피해자는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다.

국회는 특별법 제정 당시 6개월 단위의 보완 입법을 약속했지만, 2024년 8월 피해 주택 매입 방안을 마련한 게 전부다. 피해를 막기 위한 ‘예비 임차인 컨설팅 업무’ 관련 예산은 뒤늦은 올해 배정됐다.

근본적으로 시스템을 재설계하지 않으면 사후 수습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 보증금 예치제 도입과 전세대출 구조 개편 등을 통해 전세를 ‘사적 금융’에서 ‘공적 관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공인중개사에게 임대인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주고, 문제 발생 시 책임을 묻는 제도 마련도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