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쇼팽 같은 형, 리스트 같은 동생"

입력 2026-01-06 10:42
수정 2026-01-06 11:30


재기발랄한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클래식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들은 무대 밖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SNS로 팬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체스 대회에 출전하며, 연애 소식도 대중과 공유한다. 피아노에 결박되지 않고 더 넓은 세계에서 음악적 에너지를 얻는다. 지난해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열린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피아니스트 이혁(26)·이효(19) 형제가 보여준 모습은 소통에 열린 세대의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7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신년음악회’ 무대를 위해 잠시 귀국한 형제를 아르떼가 만났다.

콩쿠르 결과보다 빨랐던 업계의 러브콜

‘혁효 형제’는 콩쿠르 기간 내내 전 세계 클래식 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형제의 음악성, 무대를 즐기는 태도, 백스테이지에서 보여준 우애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세계적인 클래식 매니지먼트사 ‘리우앤코토(Liu & Kotow)’가 이들을 영입한 배경이다. 이곳은 쇼팽 콩쿠르 우승자 라파우 블레하츠, MZ피아니스트 스미노 하야토, 첼로 거장 스티븐 이설리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등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속한 곳이다.

리우앤코토 대표는 “음악 시장과 팬들의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를 공략할 아티스트로 형제를 영입했다. 이혁은 “본선 3차 결과 발표 직후 대표님과 3시간여 미팅을 가졌다”며 “상을 받는 것보다 지금의 클래식 시장과 관객이 원하는 아티스트라는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이효는 “회사는 저희를 솔리스트로 존중하면서도, 형제 듀오로서 보여줄 수 있는 하모니를 제안했다”며 “솔로와 듀오를 오가는 멀티플레이어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콩쿠르 결선 전 구두 계약을 마친 형제는 유독 바쁜 연말을 보냈다. 일본 하마마쓰 공연을 시작으로 이효의 바르샤바 리사이틀, 이혁과 지휘 거장 안토니 비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이 이어졌다.

“음악은 수학이 아니니까요”



쇼팽 콩쿠르 결선 진출 무산에도 이혁은 담담했다. 그는 2022년 롱티보 콩쿠르 1위 등 화려한 수상 이력을 보유하고 있고, 이효 역시 지난해 롱티보 콩쿠르에서 3위에 오른 실력자다. 이혁은 “음악은 수학이나 스포츠가 아니지 않나”라며 “점수를 매기는 것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되기에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고 답했다. 이효 또한 “모든 것을 투자했기에 아쉬움은 남지만 상이 전부는 아니다”라며 “우리 음악을 전 세계 청중과 공유할 수 있었기에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소신을 밝혔다.

형제는 상반된 음악적 색채를 지닌 ‘매력적인 듀오’다. 이혁이 세밀한 감정과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쇼팽·라흐마니노프형’이라면, 이효는 리스트처럼 직선적이고 화려한 면모를 지녔다. 이효는 “형은 섬세함 면에선 쇼팽 같지만, 큰 스케일의 곡을 연주할 땐 라흐마니노프 같다”며 “서로 다른 색깔이 듀오 무대에서 시너지를 낸다”고 설명했다. 음악 스타일은 다르지만 성격은 닮았다고. 둘다 밝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늘 함께였던 형제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이효는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풀고, 취향이 비슷해 논쟁할 일조차 없다”며 웃어 보였다.

피아노 밖의 세계…체스, 독서, 산책

형제는 음악 외에도 다채로운 세계를 즐긴다. 둘 다 세계 랭킹 상위권의 체스 실력을 갖췄다. 특히 이혁은 꿈으로 ‘체스 세계 챔피언’을 꼽을 정도다. 한국어, 영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며 바이올린 실력도 수준급이다.

이들의 세계는 피아노에 갇혀 있지 않지만, 확장된 외연은 결국 음악으로 수렴된다. 이혁은 “체스에 필요한 논리적·전략적 사고가 음악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프로코피예프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같은 거장들이 뛰어난 체스 플레이어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하루 7시간의 피아노 연습은 최우선순위. 산책과 독서도 빼놓지 않는다. 이혁은 “철저하게 스케줄 관리만 하면, 피아노 연습 시간 7시간 외에 남는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혁은 요즘 폴란드 초대 총리 파데레프스키의 전기를 폴란드어 원서로 읽는 중이다. 러시아 유학 시절의 영향으로 톨스토이, 체호프의 고전도 탐독한다. 이효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빠져있다고 했다.



한국서 ‘바흐’로 시작하는 2026년

두 사람은 1월 7일 예술의전당 ‘신년음악회’ 무대에서 바흐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본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하프시코드로 편곡한 곡으로, 형제는 “밝고 투명한 선율이 새해의 시작과 닮아 바흐를 택했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 이후에도 국내 무대는 계속된다. 2월에는 이효가 대전시향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하고, 5월에는 두 형제가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 풀랑크 피아노 협주곡으로 듀오 무대를 선보인다. 해외에서는 독일 라인가우 페스티벌, 바르샤바 베토벤 페스티벌, 파리 루이비통 재단 공연 등 굵직한 데뷔를 앞두고 있다.



두 형제가 추구하는 음악은 뭘까. 이혁은 “피아니스트는 작곡가의 의도를 현대 청중에게 전하는 대변인”이라며 “작곡가의 의도를 깊이 연구하되 나만의 색깔을 담아 마음에 닿는 연주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효는 “음악은 삶의 동반자이자 감정의 매개체”라며 “제 감정을 확실히 알고 이를 청중에게 진실하게 전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새해 목표를 묻자 소박하지만 단단한 답이 돌아왔다. “하루하루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매 순간 집중하다 보면 성장의 기회가 올 거라 믿습니다.”(이혁·이효)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