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EBS 다큐멘터리 '특별하지 않아서 좋았다'를 보며 느낀 복잡한 감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필자가 참여한 해심당이 소개되어 기뻤지만, 동시에 많은 성찰을 하게 되었다는 것. 특히 부산에서 평생을 사시다 덕소로 오신 부모님을 보며, '익숙한 곳'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공간도 평생 쌓아온 관계와 일상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깨달았다. 노년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의 시간이라는 것을.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는 단순히 같은 장소에 머무는 것을 넘어, 스스로 결정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미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하는 어르신들도 계시다. 그분들을 위해 건축가로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은 그 고민이 담긴 두 가지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해심당 ? 도심형 고령화 특화주택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해심당'은 필자가 기획 및 설계에 참여한 프로젝트다. '편한 마음을 가지고 지낼 수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65세 이상 무주택 어르신들이 사신다.
이 집의 설계와 기획에 참여하며 가장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였다. 부모님을 보며 알았다. 노년에는 타인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서 해심당에는 층마다 공동 거실이 있다. 어르신들이 모여 차 한잔하시고, 이야기 나누는 공간. 하지만 방으로 돌아가면 완전히 독립된 나만의 영역이 있다. 문을 닫으면 혼자, 문을 열면 이웃. 그 거리감이 중요했다.
옥상에는 정원을 만들었다. 어르신들이 직접 채소를 키우고, 꽃을 가꾸는 공간. 흙을 만지고, 씨앗이 자라는 것을 보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 그것이 생명력이라고 믿었다. 복도와 공용 공간에는 식물을 심었다. 실내에서도 자연과 함께 살 수 있도록.
1층은 동네에 열려 있다. 작은 카페 같은 공간에서 지역 주민들도 저렴하게 차를 마실 수 있다. 해심당은 고립된 노인주택이 아니다. 동네의 일부다. 그래서 건물 외관도 주변과 어울리도록 신경 썼다. 이 건물이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동네 좋은 건물'이 되길 바랐다.
해심당의 어르신들은 자치회를 운영한다. 청소 당번도 정하고, 공동 공간 사용 규칙도 만든다. 누군가 아프면 서로 챙긴다. 보호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가시는 분들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며 알았다. 해심당도 결국 '새로운 곳'이다. 어르신들이 이곳을 진정으로 '익숙한 곳'으로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단지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 했을 뿐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집 - 진주 LH 영구임대주택 리모델링 시범 프로젝트
필자가 참여한 또 다른 프로젝트는 LH 영구임대주택 리모델링이다. 1993년에 지어진 경남 진주의 오래된 임대주택 단지로 30년이 넘은 집들이었다. LH에서 고령자를 위한 새로운 주택 모델을 만들어보자며 시범 프로젝트로 시작한 일이었다.
처음 그 집들을 봤을 때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좁고, 어두웠다. 중문이 햇빛을 막고, 작은 창으로는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낡은 벽, 오래된 바닥. 공공임대주택에 살면 우울해진다는 말이 있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 집들을 보며 알았다. 공간이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래서 다짐했다. 주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집을 만들자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빛을 들이는 것이었다. 주방과 거실 사이의 중문을 없앴다. 문을 미닫이로 바꿨다. 현관에서 발코니까지, 빛이 온 집 안을 관통하게 했다. 맑은 날에는 햇빛이 집 안 깊숙이 들어온다. 그것만으로도 집이 달라 보였다.
조명도 바꿨다. 차갑고 밝은 형광등 대신 따뜻한 색을 택했다. 미술관에 가면 느껴지는 부드러운 빛, 밝기도 조절할 수 있게 했다. 밤에는 은은하게, 낮에는 환하게. 어르신들이 원하시는 대로. 바닥과 벽, 가구의 색도 중요했다. 차가운 회색 대신 따뜻한 아이보리와 연한 녹색을 썼다. 자연에서 보던 색들. 플라스틱 같은 재질 대신 나무의 질감을 살렸다. 만졌을 때, 봤을 때, 집이 편안하게 느껴지도록.
어르신들의 안전도 고려했지만, 그것을 '안전시설'처럼 보이지는 않게 하고 싶었다. 손잡이는 디자인의 일부처럼, 센서 등은 자연스러운 간접조명처럼. 큰 글씨로 쓴 호수 판도 예쁜 사인물처럼. '노인용 주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이 시범 프로젝트를 통해 배웠다. 고령자를 위한 공간은 특별한 기술이나 고가의 자재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들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설계의 시작이었다.
나이 드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세상을 위해
나는 여전히 부모님에 대해 미안함을 갖고 있다. 덕소로 오시게 한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부산의 그 아파트, 매일 차 한 잔 나누시던 친구들, 오랜 단골이었던 식당과 병원. 그 모든 것을 떠나오시게 한 것이.
해심당을 설계할 때도, 진주의 임대주택을 리모델링할 때도, 나는 항상 부모님을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행복할까. 그러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보며 깨달았다. 아무리 좋은 공간을 만들어도, '익숙한 곳'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미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하는 어르신들이 계시니까. 그분들이 새로운 곳에서도 빨리 적응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그곳이 또 다른 '익숙한 곳'이 될 수 있도록. 그것이 건축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건축가로서 나는 계속 질문할 것이다. 노인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노인이 주체가 되는 공간은 무엇일까? 보호의 공간이 아니라, 존엄의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본 후 추가된 질문. '새로운 곳'에서도 빨리 '익숙한 곳'이 될 수 있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나이 드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그래서 더 좋은 세상. 그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들로서, 건축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나이 드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미래다. 그렇기에 익숙한 곳에서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특별한 권리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김성훈 지음플러스 대표,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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