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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의 길을 걸으며 늘 느끼는 건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불변의 진리다. 처음 법학을 접한 뒤 독학하던 시절, 이미 사법 시험을 통과한 사법 연수생을 보면 어떻게 이 어려운 내용을 다 이해했는지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사법연수원을 들어가 보니 사법 시험은 제대로 법을 공부할 자격을 검증하는 문턱이었을 뿐, 진짜 공부는 그때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연수원으로 법관 연수를 오는 현직 판사들을 보며 '나도 판사가 되면 법에 정통해질 수 있으리라'하는 희망을 갖곤 했다. 부장판사도, 재판연구관도 완벽하지 않다배석판사가 된 이후 다시 깨달은 건 스스로의 부족함뿐이었다. 그럼에도 사실관계와 쟁점을 세련되게 정리하며 해박한 법리로 결론을 이끌어내는 부장판사를 보며 언젠가 나도 부장이 되면 저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단독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부장판사를 모두 거친 이후에도 여전히 내가 모르는 것과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엔 대법관들조차 사건 기록을 두고 깊은 고민을 거듭하시는 모습을 보며 완전한 '경지'란 존재하지 않음을 실감했다. 젊은 시절 하늘같이 보였던 부장님들과 대법관님들도 내면의 흔들림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매 순간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하며 이를 극복하려 애쓰셨던 것이다. 관점의 차이일 뿐, 누구도 완벽할 수 없고 실수가 없을 순 없다.
법조계만 그럴까?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다 보니 행정부, 정계, 기업, 학계 등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지인들을 보게 된다. 젊은 시절엔 그 자리에 오른 분들이 모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완벽한 판단력과 통찰력을 갖춘 분들이라 여겼다. 막상 가까이서 보면 그들 역시 여전히 불충분하고 불확실한 정보 속에서 하루하루 고심하며 힘든 의사 결정을 내리는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다만 훌륭한 리더는 그 과정에서 동료의 조언과 견제가 필수란 점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점이 다를뿐이었다. 반대 의견을 '강제'하는 이스라엘 모사드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1997년 괌 공항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를 언급하면서 잘못된 판단을 내린 기장을 그보다 기수가 낮은 부기장이 제대로 제지하지 못한 점을 주요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지적했다. 상명하복의 권위적인 문화에선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제시하기 어렵고, 그 결과 리더의 독단이 치명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수록 이 같은 실수의 위험은 현저히 줄어든다.
서구에선 일찍이 경직된 위계 문화나 집단 사고의 쏠림을 막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왔다. 고대 이스라엘의 산헤드린 공회에선 너무 수월하게 만장일치 의견이 나온 경우 결의 자체를 미루거나 무효로 하기도 했다. 영화 '월드워Z'에 묘사된 것과 같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10인 위원회에서 9인이 같은 의견이면 나머지 1인은 자신의 견해가 어떻든 의무적으로 반대 의견을 말해야 하는 '10th man' 제도를 뒀다. 1인이 제시한 반대 의견이 합리적 의심 없이 제거되지 않으면 쉽사리 의사 결정을 내리지 않는 구조였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 의무적으로 반대 의견을 말해야 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제도를 둔 것 역시 같은 취지다. 아무도 리더 1명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거나 모두가 옳다고 믿는 순간, 가장 큰 위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수평적 조직 문화, 합리적 판단의 필수 조건법원이나 로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기수 문화와 도제식 교육이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법조계에서 배석 판사나 어쏘 변호사가 부장판사나 파트너 변호사 의견에 반대하거나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의사결정권자가 돼보면 불충분한 정보와 분석에 의존해 혼자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면 주요 사실이나 법리를 간과하거나 부당한 선입견으로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이때 부족한 점을 짚어주고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후배나 동료는 가장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그들의 솔직한 의견이야말로 잘못된 판단을 막는 최후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결국 관건은 조직 문화가 얼마나 열려 있느냐다. 경직된 위계 문화로 인해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분위기에선 유능한 인재일수록 침묵하게 되고, 실수와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서로 다른 시각을 존중하며 입체적으로 의견을 모으는 조직은 실수할 확률을 현저히 줄이면서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의견의 차이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더 나은 판단에 이를 수 있다. 성숙한 조직에서 반드시 필요한 건 완벽한 리더가 아니라, 그의 의견에 의문을 품고 이를 솔직히 말하는 용기가 존중받는 문화일 것이다. 법정에서든 기업에서든, 진정한 리더십은 다르게 생각할 용기를 품은 사람들과 이를 수용할 또 다른 용기를 품은 사람들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지금, 바로 나부터 후배들의 직언을 새겨들을 용기를 키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