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 개입에도 달러 수요 폭증…5대銀 달러예금 12% 늘어

입력 2026-01-04 17:44
수정 2026-01-05 00:47

개인과 기업이 5대 시중은행에 쌓아둔 달러예금 잔액이 지난달에만 12%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달러예금 증가분의 약 70%는 정부가 “원화의 과도한 약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지난해 12월 24일 이후 늘었다. 원·달러 환율 안정을 위한 당국의 움직임에도 개인과 기업이 이를 달러 매수 기회로 활용하려는 수요가 높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연말 달러 수요 쏠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작년 말 기준 665억2300만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 말(596억5300만달러)과 비교해 한 달 만에 11.5%(68억7000만달러) 불어났다. 이는 이스라엘의 예멘 본토 공습으로 달러 수요가 급증한 2024년 8월(10.3%)보다도 높은 수치다.

5대 은행의 달러예금은 작년 1~11월 누적 기준 37억3700만달러 감소했다. 하지만 12월에만 70억달러 가까이 늘면서 연말 달러예금 잔액은 2023년 1월(695억4300만달러) 이후 약 3년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작년 12월 24일 이후 집중적으로 늘어났다. 지난달 24일은 당시 기획재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정책 실행 능력을 보여주겠다”며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시장 안정 조치에 나선 시점이다. 5대 은행 중 한 은행에서는 지난달 월간 달러예금 증가분의 70%가 24~31일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원·달러 환율 상승을 기대하는 시장의 심리를 꺾기 위해 적극적인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섰지만, 개인과 기업 가릴 것 없이 24일 이후 달러 매입이 급증했다”며 “특히 공휴일(성탄절)이 지난 26일 기업의 달러예금 증가폭이 기록적으로 컸던 점을 보면 달러 비축 기회로 판단을 내린 무역업체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달러 비축 수요 여전”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해 시중 달러 공급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을 연이어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23일엔 국민연금의 환헤지 전략 상시화를 결정하며 언제든 시장에 달러가 대규모로 풀릴 수 있다는 신호를 내보냈다. 또 해외 주식을 팔고 국내 주식을 매수하는 개인투자자에게 양도소득세 면제라는 당근책을 24일 내놓았다. 앞서 19일엔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7대 수출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불러 모아 “오해받을 일을 하지 말라”며 원활한 달러 수급을 위한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외환당국의 달러 공급 조치 역시 환율의 과도한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는 환율이 언제든 하향 안정화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다만 당국의 시장 안정화 조치 이후 달러예금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당국의 조치에도 달러를 확보하려는 시장의 대기 수요가 견고하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화 약세를 원하는 시장 기대가 여전한 만큼 환율도 슬금슬금 오르는 추세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지난해 12월 23일 1483원60전에서 29일 1429원80전까지 떨어졌지만 30일 1439원으로 반등했다. 이달 2일엔 1441원80전으로 더 올랐다.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하향 안정화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섣부른 추격 매수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은 “오는 4월로 예정된 한국 국채의 세계 국채지수(WGBI) 편입과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의 매수세 지속으로 올해엔 원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며 “상반기 내에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중·후반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단기적 환차익을 노리고 달러를 매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5대 은행의 엔화예금은 지난해 11월 말 1조1310억엔에서 12월 말 1조2260억엔으로 8.4% 늘었다. 2023년 11월(14.1%)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원·엔 재정환율(오후 3시30분)이 지난달 23일 100엔당 950원51전에서 29일 915원39전으로 급락한 점이 엔화 저가 매수 수요를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