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임시정부 보존, 그뒤엔 정몽구 명예회장 노력 있었다

입력 2026-01-04 14:55
수정 2026-01-04 15:05


“임시정부청사에 대한 한국 정부와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감안해 한국이 재개발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길 바랍니다.”

2004년 5월 중국 상하이시 정부청사에서 한정(韓正) 상하이 시장(현 국가부주석)과 만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사진)은 임시정부청사가 있는 상하이시 로만구 지역 재개발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요청하며 이처럼 말했다. 당시 상하이시 정부는 ‘2010 상하이 엑스포’를 앞두고 임시정부청사를 포함한 로만구 일대를 재개발하는 계획을 세웠다. 비교적 낙후된 임시정부청사 주변지역(약 1만4000평)을 쇼핑센터와 위락공간을 갖춘 상업지구로 전면 재개발하는 프로젝트였다.

국내에서는 상하이시 로만구 재개발 프로젝트를 외국 기업이 맡으면 임시정부청사의 온전한 보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우리 정부도 상하이시에 임시정부청사 주소지인 ‘306롱 3~5호와 318롱 전체’의 보존을 요청했다.

하지만 상하이시는 임시정부청사 인근 지역이 수십 년간 소외지역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임시정부청사 부근만 재개발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우리 정부가 상하이시 측 인사를 만나 의견을 전달하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되자 현대차그룹이 발 벗고 나섰다. 정 명예회장이 직접 한국 기업이 사업을 담당할 수 있도록 상하이시 측에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당시 한 시장과 만난 자리에서 “첨단의 미래와 옛 황금기 중국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는 국제도시인 상하이시에 있는 임시정부청사는 한국의 독립혼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곳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 의미가 남다른 민족적·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라고 호소했다.



면담에는 양딩화(楊定華) 상하이시 부비서장 겸 도시개발담당관이 참여해 상하이시와 현대자동차 간 경제협력 방안에 관한 논의도 함께 이뤄졌다. 이후 한 시장과 이창동 당시 문화부 장관의 면담이 성사됐고, 결국 상하이시가 추진하던 재개발 프로젝트가 유보되면서 임시정부청사는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7일 중국 국빈 방문의 마지막 일정으로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할 예정인 가운데 20여년 전 현대차그룹의 청사 보존 노력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올해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건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과거 한중 양국이 국권 회복을 위해 함께한 역사적 경험을 기념할 예정이다.

임시정부 청사가 상하이 도심 한복판에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재개발로 청사가 훼손되는 것을 막아낸 정 명예회장의 민간외교 활동이 있었다. 신현택 당시 문화부 기획관리실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제 공개입찰을 실시하고서도 계획 자체를 전면 보류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임시정부청사 보존에) 민관이 혼연일체로 협력해 범국가적인 과업으로 추진했는데, 이런 우리 측의 노력이 중국 정부에 충분히 전달된 결과”라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독립에 헌신한 순국선열의 희생 정신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독립유공자 보훈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엔 국가보훈부와 ‘국가보훈 사업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독립운동 사료 전산화 △유해봉환식 의전차량 지원 및 국립현충원 셔틀버스 기증 등을 통해 독립유공자 보훈 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독립유공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고 보훈 문화 확산에 기여하는 차원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유해봉환식에 필요한 유해운구 차량 및 유가족 이동에 제네시스 G90 등을 의전차량으로 제공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전세계 독립운동 사적지 보존에도 본격 나선다. 현대차그룹은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 현황을 파악하고, 개보수가 필요한 사적지는 국가보훈부 등과 협의를 통해 보존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독립유공자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그 가치를 다음 세대로 전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현대차그룹은 앞으로도 인적·물적 자원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보훈 활동에 국가보훈부와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중국에서의 사회공헌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내몽고 사막화 방지 사업인 ‘현대그린존’ 프로젝트 △소외 지역 소학교를 지원하는 ‘꿈의 교실’ 프로젝트 △수소 에너지 관련 역량 교육인 ‘수소과학 교실’(HTWO 광저우 주재) 등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이 같은 노력에 현대차는 지난해 중국사회과학원이 발표한 ‘기업사회책임 발전 지수 평가’에서 자동차 부문 기업에 10년 연속으로 1위에 올랐다. 2025년 기준으로는 중국 전체 기업 중 3위(5년 연속), 외국 기업 중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