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머니 X파일>은 2026년 신년 기획으로 대한민국의 생존 전략을 ‘트러스트 커넥터’로 제시합니다. ‘트러스트 커넥터’는 '가격'이 아닌 '신뢰(Trust)'와 '연결(Connect)'이라는 한국의 글로벌 지정학적 강점을 극대화하는 전략입니다. 한국이 어떻게 신뢰와 연결을 자산으로 바꿔 번영의 길을 찾을 수 있을지 살펴봅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반도체를 넘어 바이오산업으로 확전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원칙이었던 '비용 효율성' 대신 '신뢰'와 '안보'가 대체하면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미국 생물보안법의 파장8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2026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FY2026)'에 서명했다. 업계에선 해당 법안이 단순한 미국의 국방 예산 계획안을 넘어 전 세계 제약·바이오 산업의 지형을 흔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국방·정보당국은 해당 법안에 중국의 대규모 생체·유전체 데이터 수집과 잠재적 무기화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에 따라 중국계 바이오·유전체 기업을 '우려 업체'로 정하는 내용의 '생물보안법(Biosecure Act)'를 담았다.
관련 법안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 산하 모든 기관은 이들의 우려 기업이 생산한 장비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없다. 이들 기업과 거래하는 제3의 제약사나 연구기관도 미 연방정부와의 계약이 금지된다. 미 국립보건원(NIH)의 연구비 지원이나 연방 조달 시장 참여가 막힌다는 것은 사실상 미국 시장에서의 퇴출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다.
미 국회 자문 기구인 신흥기술안보위원회(NSCEB)는 "중국의 바이오 기술 부상은 '충격적이고 두려운 수준"이라며 "향후 3년간 신속 대응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미국 정부는 유전체 데이터가 생물학적 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을 핵무기만큼이나 치명적인 국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기업이 타깃?해당 법안을 막기 위해 우시앱텍 등 중국 기업은 지난 2024년에 약 110만 달러의 로비 자금을 썼다. 하지만 미 의회의 초당적 합의와 미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법안은 기존 계약에 대한 유예 기간을 두었다. 하지만 신약 개발 사이클이 통상 10년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들에 당장 대비해야 한다.
전 세계 의약품 위탁생산 시장에서 중국 우시 그룹의 위상은 압도적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판매되는 의약품의 약 4분의 1이 우시앱텍의 손을 거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우시앱텍 매출의 65%가 미국 시장에서 나올 정도다. 미국 바이오협회(BIO)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바이오기업의 약 80%가 중국 위탁개발생산(CDMO)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생물보안법 통과가 가시화되면서 상황은 변했다. 우시바이오로직스와 우시앱텍의 주가는 내려갔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중국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업계에선 이들이 차지하고 있던 시장 점유율을 누가 메울 것인가가 관심이 커졌다.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신뢰할 수 없는 공급망은 잘라내겠다는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다. 인도는 지식재산권 보호와 품질 이슈에서, 유럽은 높은 비용과 지리적 거리에서, 일본은 디지털화된 대량 생산 능력에서 약점을 보였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선 미국과 빅파마들이 제조 역량과 동맹국으로서의 신뢰를 모두 갖춘 한국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보 비용'의 청구서생물보안법과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가장 큰 우려는 비용이다. 중국의 저가 CDMO 대신 한국이나 서방 기업을 이용할 경우 생산 단가 상승은 불가피하다. 업계에서는 중국 대비 한국 기업의 단가가 최소 20~30%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결국 약값 인상으로 이어져 환자들과 보험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 JP모간 리서치는 관세와 공급망 재편 비용을 "미국 기업과 가계에 대한 세금 인상"이라고 지적했다. 안보를 위해 효율을 희생한 대가가 '지정학적 인플레이션'이라는 지적이다.
중국 기업이 그대로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시장이 막힌 우시앱텍 등은 유럽, 동남아시아, 남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초저가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는 '양날의 검'이다. 중국 견제라는 측면에서는 한국에 유리하다. 하지만 언제든 화살이 한국을 향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에 더 많은 '미국 내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 이는 국내 투자를 위축시키는 '구축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세계 경제가 '효율성 극대화'에서 '신뢰 기반 블록화'로 넘어가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과거 글로벌 공급망은 '가장 싸고 빠르게 만드는 곳'을 찾아 이동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와 손잡을 것인가'가 핵심이다. 한국이 미·중 갈등 속에서 '트러스트 커넥터(Trust Connector)'라는 새로운 국가 전략 모델을 확립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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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