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연초에도 고환율 상황에 대한 경계감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기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환율 상승 기대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에 대해선 "탓을 하는 게 아니라 1480원(이라는 높은 환율 수준)에서 추가로 달러를 매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2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한은 강당에서 시무식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연초에도 외환시장 경계감이 계속되느냐'는 질문에 이 총재는 "지금 환율은 국내 기관의 기대가 드라이브하고 있다"며 "기대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말 환율 관리를 위해 계속된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이 연초에도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적정 환율에 대해선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달러인덱스와 벌어져 우리만 많이 올라가는 것은 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해외 투자은행(IB)들의 환율 전망이 주로 1400원 초반인 것과 달리 국내 기관은 1480원, 1500원 등으로 높게 보고 있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올해 '(대미 투자금액인) 200억달러가 유출된다, 국민연금도 기계적으로 해외 투자를 한다'는 기대가 있다"며 "이는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0억달러의 해외 투자액에 대해선 "절대로 기계적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한은이 금고지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외환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금통위원들이 (외환보유액을 쓰도록)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과 관련해선 거시경제적인 관점에서 투자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 총재는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하더라도 환율이 1480원일 때와 1400원일 때 같은 속도로 할 필요가 없다"며 "환율이 높아지면 꼭 필요한 것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늦추다가 환율이 떨어지면 속도를 높이는 식으로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연금을 동원해 노후 수익률을 훼손한다'는 비판에 대해서 "해외 투자를 할 때 외환시장에 영향을 줘 환율이 높아지면 미국 투자의 수익률이 굉장히 높아지지만 가지고 들어올 때는 반대가 된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환헤지를 지금보다는 더 많이 해야하고, 해외로 나가는 비중도 좀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게 수익률을 훼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자신이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필요성을 강조했던 학자라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시절인 지난 2004년 보건복지부가 꾸린 '국민연금 중장기 기금운용 마스터 플랜 기획단'에서 중장기 투자정책팀장을 맡았다. 당시 이 총재는 해외 투자를 단계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외환시장에 충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총재는 "해외 투자를 하자는 입장이었지만 환헤지를 '제로'로 놓는 것은 이론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해외 자산을 가지고 들어오는 시기에는 수익률 고정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또 캐나다 사례를 근거로 환헤지 0%를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캐나다는 약 20% 정도는 달러채권을 발행해 투자하기 때문에 달러 자산과 부채가 모두 있는 구조"라며 "이는 20%가량 환헤지를 실행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외채를 발행해 외환시장에 주는 영향을 줄이겠다고 했는데, 그걸 통해 환헤지가 되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국민연금이 해외로 나가면서 국내시장이 커질 수 없는 구조가 됐다는 점도 문제"라며 "우리나라 사람이 취업이 안되고, 환율이 막 올라가 수입업체가 어려워지는 비용을 국가 경제 전체 차원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다만 이 총재는 고환율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특정 경제주체의 탓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어떤 부분이 외환시장에 영향을 주는지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해본 것"이라며 "누군가를 탓한다는 말로 모든 분석이 넘어가버리는 게 아쉽다"고 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