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불과 재'가 개봉 17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또 한 번 흥행 이정표를 세웠다. 2025년 연말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데 이어, 2026년 새해 극장가의 문을 여는 대표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2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아바타: 불과 재'는 지난 1일 하루만에 35만 8017명을 동원해 누적 관객 수 502만1288명을 기록했다.
이는 2025년 개봉작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500만 관객을 넘어선 기록이다. 같은 해 흥행작으로 꼽히는 '주토피아 2'보다도 이틀 빠른 추이다.
국내 흥행 열기는 해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박스오피스 모조 집계 결과, '아바타: 불과 재'는 글로벌 누적 수익 8억5979만 달러(약 1조2441억 원)를 돌파했다. 개봉 3주 차에 접어든 현재도 예매율은 50%에 육박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흥행 독주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아바타: 불과 재'의 흥행은 한국 영화 산업의 현실과 대비되며 뼈아프다. 올해 들어 국내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의 존재감은 뚜렷하게 약화됐다. 관객의 발길은 검증된 해외 대작으로 쏠리는 반면, 한국 영화는 흥행과 화제성 모두에서 고전하는 모습이다. '아바타: 불과 재'의 독주는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저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 영화가 처한 위기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12월 31일 개봉한 한국 멜로 영화 '만약에 우리'는 지난 1월 1일 일 관객수 10만 64명을 동원하며 누적 관객수 22만 9201명을 기록하며 선방했으나 '아바타: 불과 재'와 '주토피아 2'에 밀려 박스오피스 3위에 그쳤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일 관객수 5만 3427명)와 '신의 악단'(2만 9755명)도 4, 5위에 머물렀다.
'아바타: 불과 재'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한 '아바타'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2009년 개봉한 1편은 혁신적인 시각효과로 영화 기술의 새 지평을 열었고, 2022년 공개된 '아바타: 물의 길'은 바다와 생명체의 움직임을 극사실적으로 구현해 또 한 번 진화를 보여줬다. 이번 작품은 그 연장선에서 세계관을 한층 확장하며 새로운 갈등 구도를 제시한다.
이야기는 설리 가족의 첫째 아들 네테이얌의 죽음 이후에서 출발한다. 깊은 상실에 잠긴 설리 가족 앞에 바랑이 이끄는 재의 부족이 등장하면서 판도라는 또 다른 위기에 휩싸인다. 불과 재로 뒤덮인 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색채를 띤다.
이번 작품의 핵심 키워드는 '불'이다. 생명력 넘치는 숲과 푸른 바다로 대표되던 판도라에 화산과 잿빛 풍경이 더해지며 전혀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화산 폭발로 삶의 터전을 잃고, 판도라의 어머니 에이와에 대한 믿음마저 저버린 재의 부족 망콴족은 불타버린 홈트리를 거점으로 삼는다. 검게 그을린 숯처럼 변한 공간은 관객이 알고 있던 판도라의 이미지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여기에 하늘을 유목하는 바람 상인 틸라림족이 새롭게 등장해 세계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들에 대해 "그들의 삶의 철학은 곧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바람을 따라 판도라 전역을 이동하며 다른 부족들과 교역하는 이들은 웃고 춤추며 음악을 즐기는 유쾌한 성향을 지닌 존재들로 그려진다. 기존 나비족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캐릭터들이다.
새로운 부족의 등장은 새로운 크리처들의 향연으로 이어진다. 하늘을 항해하는 거대한 생명체 메두소이드와 윈드레이는 보는 순간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약 152미터에 달하는 메두소이드는 해파리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존재로, 바람 상인들은 이 생명체에 곤돌라를 매달아 생활한다. 갑오징어에서 모티브를 얻은 윈드레이는 이 곤돌라와 메두소이드를 이끄는 항해사의 역할을 한다.
재의 부족이 타고 다니는 위협적인 크리처 나이트레이스도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판도라를 증오하는 리더 바랑과 함께 등장하는 이 생명체는 강렬한 존재감으로 위기를 증폭시킨다. 여기에 전작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토루크와 툴쿤도 다시 등장해 팬들에게 반가움을 안긴다. 이들은 제이크와 로아크와의 교감을 통해 감정적 깊이를 더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과 나비족의 단순한 대립을 넘어, 판도라 자체를 증오하는 나비족인 재의 부족이 주요 갈등 축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마일스 쿼리치 대령과 RDA와 손을 잡고, 쿼리치 역시 자신의 목표를 위해 위험한 거래를 감수한다. 이로 인해 판도라는 이전보다 훨씬 예측하기 어려운 위협에 직면한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해 "새롭고 신선한 요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푸르고 청량한 바다가 중심이었던 '아바타: 물의 길'과 달리, '아바타: 불과 재'는 타오르는 불과 잿빛 풍경을 전면에 내세워 시각적 대비를 극대화했다. 업그레이드된 비주얼과 스케일, 그리고 설리 가족이 마주하는 새로운 여정이 관객들을 다시 한 번 판도라로 이끌고 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