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세기의 미녀, 브리짓 바르도를 보내며

입력 2026-01-02 15:25
수정 2026-01-02 15:26
마을의 서점 아가씨. 그녀를 모르는 사람도, 탐하지 않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브가 탄생하기도 전에 있었을 것 같은 여성의 본질이었고, 원형이었다. 햇빛을 닮은 금발 머리에 밝은 커피색의 피부, 훤칠한 키와 멋진 다리를 가진 그녀는 마을 사람 모두의 욕망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과연 그녀는 ‘신이 창조한 여자’가 분명했다.



로제 바딤은 그가 준비하던 영화의 오디션을 보러 온 브리짓 바르도를 탈락시켰다. 그저 그런 영화들에 단역이나 조연 정도의 역할을 맡아 온 그녀의 연기가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딤과 바르도는 사랑에 빠졌고, 당시 18세였던 그녀는 그와 결혼했다. 바딤은 아내인 바르도를 주인공으로 몇 개의 시나리오를 썼고, 그중 하나가 전설의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1956) 였다. 한 바다 마을의 서점 아가씨 ‘줄리엣’으로 등장하는 바르도는 이 작품으로 프랑스 뿐만이 아닌 전 세계를 대표하는, 그리고 1950년대와 60년대를 대표하는 섹스 심벌로 부상했다. 단언컨대 그녀를 대체할 만한 ‘여성 육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정으로 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이었다.



이 작품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와 브리짓 바르도의 부상은 시대적으로, 영화사적으로 역설이었다. 1950년대 누벨바그 운동으로 새로운 형태의 작가주의와 영화 예술의 격변이 일어나고 있는 프랑스 영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누벨바그가 촉매가 된) 전 세계적인 영화 씬에서 통속물에 가까운 바딤의 작품은 어쩌면 다소 퇴행적이고 의아한 출현이었다. 더군다나 각본가로 재능을 인정받은 로저 바딤의 데뷔작으로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의 인생에 ‘바르도’라는 인물의 출현이 그의 작가주의를 압도하는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동시에 바르도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고 스타가 되어 활약하게 되는 60년대는 민권운동과 함께 (제2차) 페미니즘이 정점에 이르게 되는 시기였다.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의 줄리엣이 그랬던 것처럼, 주로 남성 욕망의 집약체, 그리고 관음의 대상으로 설정된 역할에 충실했던 바르도의 스타덤은 어쩌면 시대를 역행하는 트렌드였다.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녀의 압도적인 섹스 어필이 동서양과 시대를 초월한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바르도는 그만큼 막강한 존재였다.



이후 바르도 자신은 다른 종류의 역할을 시도해 보고 싶었겠으나 시대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바딤의 작품 이후로도 그녀의 커리어는 줄곧 성 착취적인 맥락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가 1973년, 39세라는 다소 이른 시기에 <콜리노트의 에딩과 기쁨의 이야기>로 은퇴를 선언한 것은 역시 그녀의 육체에 성흔(stigmata)처럼 새겨진 대중적 관념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그녀는 운동가로 변신했다. 물개 보호 운동의 참여로 시작되었던 바르도의 작은 발견은 40여편의 영화로 얻은 모든 부와 명예를 모두 동물권 운동에 헌정할 정도로 중요한 인생의 아젠다로 발전했다. 이후로도 그녀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말고기 반대 운동, 곰 사육 반대 운동 등 동물들이 학대받고 있는 곳에는 어디든 편지를 쓰고 반대 운동을 실행했다. 그녀가 한국을 향해 벌인 개고기 반대 운동 역시 그녀가 주도했던 수많은 반대 운동 중 하나였다. 그녀의 관심과 헌신으로 많은 동물이 고통에서 탈출하고, 그들의 짧은 삶을 해악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브리짓 바르도는 멋진 몸을 가진 배우보다는 작은 생명들을 위해 싸우는 파이터에 가까웠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육체적인 욕망을 상징하던 여배우는 결국 육체를 지키는 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그런 그녀가 12월 28일 그녀를 창조했던 신으로 돌아갔다. 참으로 고귀하고 숭고한 삶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그러지 못했지만, 과연 신은 그녀를 옳은 역할과 목적으로 쓰신 셈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