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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상속 준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언이 상속을 준비하는 대표적 방법으로 활용돼 왔지만, 몇 가지 한계가 분명하다. 유언은 유언자가 사망한 후 재산이 일시에 상속인에게 이전되기 때문에 생존 중 상속인들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한 설계가 어렵다. 또 엄격한 방식에 따라 작성해야 해 효력 다툼이 빈번하고, 유언집행자를 지정하지 않으면 집행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된다.
이런 유언의 한계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최근 '유언대용신탁'이 주목받고 있다. 상속 이후 법률관계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위탁자의 재산 상태에 변동이 있어도 당초 의도한 재산승계 계획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법의 허점' 노린 편법 상속?유언대용신탁이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는 유류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민법은 유류분반환 대상 재산을 '피상속인의 상속재산과 생전증여 재산'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하면 위탁자(피상속인) 사망 후 신탁재산이 수탁자로부터 수익자에게 이전되기 때문에 엄밀히 보면 상속재산이나 생전증여 재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X씨가 40억원 상당의 잠실 아파트를 신탁재산으로 하여 Y은행을 수탁자로, 자녀 A를 수익자로 지정하고 자신의 사망 후 아파트를 A에게 이전하도록 하는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X씨의 다른 자녀 B는 아무 재산도 상속받지 못했으므로 원칙적으로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0억원 상당의 유류분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이 유류분반환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B는 유류분반환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
유언대용신탁으로 이전된 재산은 위탁자 사망 전에 이미 수탁자 명의로 이전되므로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고, 수익자는 위탁자 사망 후 재산을 취득해 생전증여 재산으로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민법 문언을 엄격하게 해석하면 유언대용신탁 재산은 유류분반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었다.하급심 판결, 은행들 긴장시키다실제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2020년 1월 유언대용신탁 설정 시 유류분반환청구가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2017가합408489 판결). 이 판결은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하면 신탁재산을 생전에 수탁자에게 증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고, 수탁자에게 유류분 침해 고의가 없는 한 신탁 설정 후 1년이 경과한 유언대용신탁은 이후 위탁자인 피상속인이 사망하더라도 유류분반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민법은 "증여는 상속개시 전 1년간에 행한 것에 한해 유류분 산정 대상이 된다. 당사자 쌍방이 유류분권리자에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증여한 때에는 1년 전 것도 같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남지원 판결은 신탁 설정에 따라 수탁자에게 재산을 이전한 것을 '수탁자에 대한 증여'로 본 것이다.
이 판결 이후 금융기관 같은 제3자를 수탁자로 하는 유언대용신탁은 수탁자에게 유류분 침해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 한 유류분반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됐다. 그 결과 유언대용신탁을 유류분 회피 수단으로 인식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유류분 침해를 주장하는 B는 X의 사망 후 재산을 취득한 상속인 A뿐 아니라 수탁자인 Y은행을 상대로도 유류분반환을 청구해야 하며, Y은행의 유류분 침해 고의가 인정돼야만 유류분 부족액을 반환받을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이 판결 이후 수탁자인 은행을 피고로 하는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이 다수 제기됐고, 은행들은 유류분반환책임을 부담해야 할 위험에 직면했다.대법원 "형식보다 실질 봐야"그러나 최근 하급심은 유언대용신탁의 수탁자에게는 유류분반환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생전에 증여계약을 체결하되 그 효과가 사망 시 발생하는 사인증여와 유사하므로 수익자와의 관계에서 유류분반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성남지원 판결과 달리 유언대용신탁을 수익자, 즉 A에 대한 증여로 보아 유류분반환 대상이 된다고 본 것이다.
사실 이러한 판단이 나오기 이전부터 유언대용신탁의 실질은 수익자에 대한 증여로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유류분반환 대상이 된다고 보는 하급심 판결이 다수를 이뤄 왔다. 최근 대법원도 유언대용신탁에 의한 재산 이전을 증여로 보아 유류분반환 대상에 포함시킨 원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2024년 7월 11일 선고 2019다294466 판결).
이 판결은 유언대용신탁과 유류분의 관계를 상세히 설시하지는 않았으나, 위탁자인 피상속인 사망 후 유언대용신탁의 수익자에게 이전된 부동산이 유류분반환 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를 원용한 이후 하급심 판결들 역시 명시적으로 유언대용신탁이 유류분반환 대상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법원의 전반적 입장은 유언대용신탁 역시 유류분 반환 대상이 된다는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생명보험금 사례로 본 판단 기준대법원은 유사한 구조를 지닌 생명보험금청구권이 유류분반환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에서도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되는 증여인지 판단할 때는 피상속인의 재산처분행위의 법적 성질을 형식적·추상적으로 파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실질적으로 피상속인의 재산을 감소시키는 무상처분에 해당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피상속인이 보험회사에 보험료를 납입하다 사망해 제3자가 생명보험금을 수령하는 경우, 피상속인은 보험수익자인 제3자에게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되는 증여를 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를 종합하면, 형식상 민법이 정한 '상속재산'이나 '생전증여 재산'에 정확히 해당하지 않더라도 그 실질이 동일하다면 유류분반환 대상으로 포함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유언대용신탁과 유류분의 관계와 관련해 대법원이 모든 쟁점에 관해 구체적 기준을 제시한 단계는 아니므로 향후 판례의 축적을 지켜볼 필요는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의 한계를 보완해 상속을 준비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제도다. 한동안 유언대용신탁을 유류분 회피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그 본질적 장점이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언대용신탁 역시 유류분반환 대상이 된다는 판결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비교법적·법리적 관점에서도 그러한 해석이 타당하다. 유언대용신탁은 유류분 회피 여부와 무관하게 다양한 장점을 지니는 제도인 만큼,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보다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상속설계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