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독점 사활건 트럼프…엘세군도, 위성 제작·발사 '완벽 생태계'

입력 2026-01-01 16:58
수정 2026-01-01 17:00
스페이스X가 등장하기 전 위성 1㎏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데 드는 비용은 약 4만달러였다. 스페이스X가 2017년 ‘팰컨9’ 로켓 재사용에 성공한 이후 발사비용은 40분의 1 수준인 1000달러 안팎으로 급감했다. 비용 장벽이 무너지자 군사·통신·관측위성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에 비해 위성 제조 역량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각각 팰런티어와 스페이스X에서 일하던 이언 시나먼과 맥시밀리언 베나시는 이 간극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2022년 위성 제조 스타트업 에이펙스스페이스를 창업한 배경이다. 에이펙스스페이스는 설립 3년 만에 시리즈D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0억달러를 돌파했다. 위성 발사 혁신에 이어 미국이 위성 제조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주 제조 생태계의 심장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인근 엘세군도가 있다. 면적 14.2㎢, 인구 1만7000여 명에 불과한 이 소도시는 현재 우주항공·딥테크 스타트업 45개 이상이 밀집한 ‘뉴스페이스의 수도’로 불린다. 현지에서는 이곳을 실리콘밸리의 하드웨어 버전이라는 뜻에서 ‘더 군도’라고 부른다.

엘세군도의 강점은 완결된 제조·발사 생태계다. 미국 우주군 우주체계사령부가 발주하면 보잉과 밀레니엄스페이스시스템스, 에이펙스스페이스 등의 기업이 위성체를 제작하고, 인근 호손에 제조시설을 둔 스페이스X가 이를 발사하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엡실론3는 발사체 운영체제(OS)를, 라디언트는 위성용 소형 원자로를 개발한다. 설계부터 제조, 발사, 운영까지 차로 15~20분 거리 안에서 해결하는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엘세군도는 20세기 초 항공산업의 태동지였고, 2차대전 당시에는 군용기 생산 기지로 ‘민주주의의 무기고’로 불렸다. 냉전기에는 비영리 연구기관 에어로스페이스코퍼레이션이 자리 잡으며 미·소 우주 경쟁의 연구개발(R&D) 거점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02년 스페이스X 창업 이후 이곳은 민간 주도의 우주 혁신이 응축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전지구적 공공재’를 장악한 美미국의 우주산업 지배력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미 위성산업협회(SIA)에 따르면 2024년 발사된 전 세계 위성의 83%가 미국산이었고, 발사 시장 점유율은 69%에 달했다. 위성, 발사체, 지상 시스템, 데이터 활용까지 포함한 글로벌 우주경제 가치(약 5000억달러 추정)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이에 비해 유럽은 여전히 국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 모델에 머물고 있다. 유럽우주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혁신 기업이 시장의 판을 재편하는 동안 유럽은 이를 과소평가했다”며 느린 의사 결정과 고비용 프로그램 중심 생태계를 자성했다. 실제로 유럽 우주 스타트업이 공공 보조금을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4개월로, 미국(11개월)의 두 배가 넘는다. 미국은 보조금 대신 국방·우주 조달 계약으로 명확한 수요를 제시하며 기업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좁아지는 우주 생태계의 입구미 우주산업 발전의 최대 동력은 국가안보 강화다. 우주군은 지난해 4월 ‘우주 전투 프레임워크’를 통해 우주를 전투 영역으로 규정했다. 우주 기반 미사일 방어체계 ‘골든돔’ 등 안보 프로젝트의 입찰 요건을 미국 기업과 일부 동맹국으로 제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은 이처럼 국가안보의 핵심 축이 된 우주산업의 제조업 기반을 확실히 다지고 있다. 조선·전자·반도체 등 핵심 제조업을 해외에 맡긴 선택이 전략적 취약성으로 돌아왔다는 반성이다. 미 의회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는 지난해 11월 연례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지배적 위치가 첨단 기술 분야로 확대되면서 미국 및 무역 파트너에 상당한 비용을 부과하고 미국의 정책 선택지를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페이스X는 엔진부터 발사체까지 공급망을 수직계열화했고, LA 제조 스타트업 하드리안은 우주항공 부품 분야의 ‘파운드리’로 성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행정명령을 통해 “상업 우주경제 육성은 고임금 항공우주 제조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주를 향한 미국의 전략은 분명하다. 다시는 제조업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중국 역시 2045년을 우주 굴기의 해로 선언했다. 랜드스페이스, 아이스페이스 등 ‘중국판 스페이스X’를 표방하는 기업들이 군·민 융합 전략에 따라 우주정책 총괄기관인 우주항천국의 지시에 따라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2022년 말 중국이 궤도에 띄운 우주정거장 ‘톈궁’에 대해 “핵심 부품과 기술이 100% 국산화(自主可控·자주가공)됐다”고 밝혔다. “핵심 기술은 구걸해서 얻을 수 없으며 반드시 자국 역량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개방된 공공재’이던 우주산업은 점차 ‘미·중 중심의 전략 자산’으로 변모하고 있다. 양국 생태계에 편입되지 못한 국가와 기업은 발사 기회, 데이터 접근, 안보 프로젝트 참여에서 구조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주경제의 입구가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우주산업은 이제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기술·안보·제조 역량이 결합된 국가 경쟁력의 집약체”라며 “미·중이 우주 제조 생태계 구축에 집착하는 이유는 우주라는 전 지구적 공공재의 주도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한다.

엘세군도=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