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01일 15:3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국 정부와 합작해 설립한 '크루서블 조인트벤처(JV)'를 통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우호 지분을 늘리려던 고려아연의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주총 의결권 행사를 위한 주주명부 폐쇄일인 지난 31일까지 크루서블 JV에 배정한 신주가 발행 후속절차를 완료하지 못한 것이다. 10.6%에 이르는 새 지분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활용하지 못하게 되면 이번 주총에서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최 회장측과 대등한 수준까지 이사를 늘릴 수 있게 된다. ▶본지 12월 29일자 A16면 참조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관할 등기소인 서울중앙지방법원 등기국에 신주발행 변경등기를 신청했으나 2025년의 마지막 날인 전날까지 작업이 완료되지 않았다. 등기국에서는 이사회가 결의한 한 주당 발행금액과 실제 발행금액이 다른 점, 그에 따라 법정 할인율 규정을 위반하는 문제가 불거진 점 등 절차상 하자를 들어 등기신청을 받아주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크루서블 JV는 신주발행대금 납입일이었던 지난 26일 예정대로 19억3999만8782달러를 하나은행 신사동 지점에 납입 완료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법인은 고려아연과 미국 전쟁부(국방부)·전략적투자자(SI) 등이 공동 출자한 현지 합작법인으로, 고려아연이 발행하는 신주 10.6%를 배정받아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 최 회장 측의 우군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신주가 법적으로 3월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그 전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까지 발행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 발행대금 납부를 하더라도 신주발행 변경등기로 주식 발행 사실을 확정 짓고, 예탁결제원에 명의개서 및 주식 계좌 입고 등을 밟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주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돼 크루서블 JV도 3월 주총에서 주주 지위를 얻지 못할 수 있다.
이는 크루서블 JV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한 지난달 15일 이사회 결의 이후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떨어진데 따른 결과다. 납입일인 26일까지 11일 사이에 환율이 9원 떨어지면서 달러 납입액의 원화 환산금액은 173억원 줄었고, 원화 기준 주당 발행가액은 129만133원에서 128만2319원으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기준 주가 대비 신주 발행가액의 할인율도 9.77%에서 10.31%로 높아져 할인율 1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자본시장법에도 위배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고려아연은 이와 관련해 '이사회에서 신주 발행가액은 달러로 확정해 승인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원·달러 환율 하락 등 외부 요인에 의해 발행가액이 달라진 것은 이사회 결의 이후 사후적이며 통제할 수 없는 문제에 해당하며, '크루서블 JV'의 납입액은 국내에서 환전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미국으로 송금될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영풍·MBK측은 신주의 수와 발행가액 등은 이사회 결의사항이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변동에 따라 총 납입액이 달라졌다면 이사회 재결의를 거쳐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또 이사회 재결의로 증자가 일주일가량 미뤄진다고 하더라도 이는 당장 올해 크루서블 JV의 의결권 유무에만 영향을 미칠 뿐, 장기간이 소요되는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립 계획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금융당국의 판단에 주목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주주명부 폐쇄일 임박하게 해외투자자 대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하고, 실제 납입일까지 환율 변동 폭이 컸던 경우는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이례적이라 금융감독원의 유권해석이 중요하게 작용할 거라는 전망이다. 대금 납입 등 실질적인 절차가 이뤄진만큼 의결권 행사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크루서블 JV는 3월 주총에서 최 회장측을 편들 수 있다. 하지만 금감원이 이사회 재결의로만 절차적 하자를 치유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 경우 올해 고려아연 이사회는 양측이 대등한 의석을 확보하는 수준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송은경 기자 nor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