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환율·美금리…새해 증시 흔들 '회색 코뿔소'

입력 2025-12-31 16:22
수정 2026-01-01 00:36
새해에는 어떤 ‘회색 코뿔소’(예상할 수 있는 위험 요인)가 증시를 뒤흔들까. 시장 전문가들은 2026년 증시 핵심 변수로 ‘인공지능(AI) 거품 논란’과 ‘원·달러 환율’ ‘미국의 기준금리 정책’을 꼽았다. 모두 주가 변동성을 키우는 위험 요인이지만 불확실성 완화 땐 되레 ‘안도 랠리’를 촉발하는 재료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빅테크 투자’ 지속 가능할까AI 거품 논란은 새해에도 글로벌 기술주 운명을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글로벌 빅테크가 추진 중인 대규모 클라우드 인프라 투자(CAPEX)가 계획대로 이어질 경우 시장 우려는 누그러지고 엔비디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 종목이 추가 상승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과도한 차입을 동반한 투자는 투자심리를 냉각시킬 위험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클라우드 사업자) ‘빅5’의 설비투자는 올해 4710억달러(약 68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보다 23.6% 더 늘어난 수준이다. 수익성이 둔화한다면 주가도 더 크게 조정받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김병연 NH투자증권 투자전략총괄은 “현재 하이퍼스케일러의 투자 확대는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과정으로, 비교적 건전한 경쟁에 가깝다”면서도 “대규모 차입금을 활용하는 승부수는 실패 시 재무 위험의 급격한 상승으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퍼스케일러의 차입금 확대 과정에서 재무건전성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력이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 “원화 약세 압력은 지속”원·달러 환율 역시 국내 증시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는 변수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중장기적인 원화 약세 압력이 지속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의 기준금리가 2022년 이후 미국보다 낮은 역전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해외 투자 확대를 자극하고 있어서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SF평가본부장은 “원·달러 환율 상승의 가장 큰 구조적인 원인은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이라면서 “새해에도 오픈AI와 스페이스X 등 시장에서 주목받는 미국 기업들의 기업공개(IPO) 추진으로 환율 상승 추세가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재영 KB증권 외환 애널리스트도 “새해에도 환율이 1400원대에서 오르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국내 기관과 개인의 해외 투자 확대가 장기적 트렌드인 만큼 환율이 하락하려면 국내 (경기 체력을 반영하는) 제조 업황의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안도 랠리 재료’ 전환도 가능미국 통화정책의 변화도 글로벌 증시가 주목하는 회색 코뿔소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내년 5월 임기를 마치는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후임으로는 케빈 해싯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유력하게 거론하고 있다. 그동안 통화 완화적 성향을 드러내 온 인물로 달러는 새 의장 임기 시작과 더불어 장기 약세 사이클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회색 코뿔소가 우려 완화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되레 증시 강세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2025년 초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연초부터 최대 ‘악재’로 손꼽혔으나 협상 과정에서 증시 반등 재료로 변모했다.

빅테크의 대규모 투자도 국내 시장에서는 반도체 수요를 뒷받침해주는 긍정적 재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 총괄은 “새해에도 불확실성을 조금씩 해소하며 강세를 나타내는 양상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회색 코뿔소

Gray Rhino. 진동을 일으키며 다가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그 영향을 간과해 온전히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 또는 그런 위험 요인.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의 발생을 뜻하는 ‘블랙스완(Black Swan)’과 반대 개념이다.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장이 2013년 처음 제시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