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새해에도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 ‘보조금 카드’를 이어가기로 했다. 중국의 이구환신(以舊換新·낡은 소비재의 신제품 교체 지원) 대상이 이제 단순 가전을 넘어 인공지능(AI) 기능이 적용된 최첨단 제품, 전기차산업 전반으로 넓어지는 게 특징이다. 중국 가전 및 자동차 회사들이 보조금을 기반으로 덩치를 불려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돼 한국의 전자·자동차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31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중국 재정부와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전날 ‘2026년 대규모 설비 갱신 및 소비품 이구환신 정책 실시에 관한 통지’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6년도 소비재 보조금 프로그램에 625억위안(약 13조원)을 1차 배정했다. 이는 연간 전체 규모가 아니라 1차 예산으로, 신년과 춘제(설) 연휴를 앞두고 내수 부양 효과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구환신은 중국 공산당이 내수 소비 진작을 위해 2024년 중반부터 펼쳐온 정책이다. 2025년 총 3000억위안(약 62조원)의 보조금을 배정한 점을 감안하면 올해 지원 규모가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26년도 지원안은 스마트 웨어러블 기기까지 지원 대상을 넓힌 게 특징이다. 정보기술(IT) 기기 분야에선 올해 스마트폰, 태블릿에서 스마트워치, 스마트 손목밴드가 공식 지원 대상에 추가됐다. 품목당 구매가의 15%(최대 500위안·약 10만원)를 지원한다. 교체 주기가 짧은 IT 기기를 집중 공략해 소비를 부양하는 동시에 화웨이 샤오미 등 자국산 브랜드의 생태계를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가전 분야에선 냉장고 세탁기 등 6종 제품과 함께 스마트홈에 연동되는 제품에도 품목당 최대 1500위안(약 28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된다.
자동차 분야는 전기차 비중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기차 구매 시 차량 가격의 12%(최대 2만위안·약 414만원)를 지원하며 일반 신차 교체(8%·최대 1만5000위안·약 310만원)보다 지원율을 높였다. 전기차 지원금을 내연차보다 30% 이상 높게 책정해 중국의 전기차 굴기를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LG전자를 중심으로 한 국내 가전 기업은 중국은 물론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가 보조금으로 자국 제품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한국 제품이 품질 경쟁력만으로 버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조금 혜택을 받은 샤오미와 화웨이 등 중국 브랜드는 자국 안방을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보조금을 바탕으로 덩치를 키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유럽 시장으로의 수출 확대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돼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은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맞서 AI 가전, 프리미엄 부품, 초고성능 메모리 등 중국이 단기간에 따라오기 힘든 초격차 기술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