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영국의 양자 기업 ‘옥스포드 아이오닉스’가 미국 양자 기업 아이온큐에 1조5000억원 규모로 인수됐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아이오닉스는 옥스포드 대학 교원 창업(스핀아웃) 기업이다. 유럽에선 이처럼 대학·연구기관에서 나온 딥테크 기업들이 투자 침체 국면에서도 대형 투자와 인수합병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미국 정보기술(IT) 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기업정보 업체 딜룸은 ‘유럽 스핀아웃 리포트 2025’를 발간하고, 유럽의 딥테크 대학 스핀아웃들이 올해 역대 최고 수준인 91억달러(약 13조원)를 조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 전체 벤처캐피털(VC) 투자액이 2021년 정점 대비 약 50% 줄어든 흐름과 대비된다는 평가다.
대학이 투자자의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연구개발(R&D) 집약 산업의 특성이 있다. 최근 유럽에서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핀아웃 기업 상당수는 위성·양자 등 전략기술 영역에 포진해 있다. 인재 풀과 장비, 실험 인프라가 없으면 기술 축적과 사업화 자체가 쉽지 않은 산업군이기 때문이다. 이번 달 투자 라운드에서 4조원 안팎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위성 기업 ‘아이스아이’가 대표적이다. 아이스아이는 2014년 핀란드 알토대 연구진이 창업한 위성 기업으로 최근 LIG넥스원과도 위성사업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딥테크·생명과학 분야 스핀아웃 기업 76곳이 기업가치 10억달러(유니콘) 또는 연매출 1억달러 기준을 충족했다. 전 세계 대학 스핀아웃의 기업가치 총합은 3980억달러로 집계됐다.
'대학발(發)' 테크 기업을 겨냥한 신규 펀드가 잇따라 등장하는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덴마크공대(DTU)에 뿌리를 둔 PSV 하프니움은 북유럽 딥테크에 주로 투자하는 VC로, 최근 시수세미 등에 투자했다. 시수세미는 핀란드 투르쿠대에서 창업한 기업으로, 반도체 표면 세정 기술의 상용화를 추진한다. PSV 하프니움은 최근 6000만유로 규모의 1호 펀드를 마감했고, 베를린에 사무실을 둔 U2V도 같은 규모를 목표로 1차 결성을 마쳤다.
한국에서도 대학발 기술 창업이 활발해지면서 대형 투자와 인수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오준호 삼성전자 미래로봇추진단장이 KAIST 기계공학과 교수일 적 창업한 휴머노이드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기준 지난해 교수 창업은 466명으로 3년 전(315명)보다 늘었다. 교원 창업기업이 가장 많은 곳은 서울대(18개)였고 강원대(13개), KAIST(11개) 등이 뒤를 이었다. 대학정보공시 기준 지난해 신규 학생 창업기업은 1825개로 집계됐으며 업종도 인공지능(AI)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