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준수"에서 "책임자 지정"으로 - 2026 디지털금융 규제의 전환 [태평양의 미래금융]

입력 2025-12-31 07:48
수정 2025-12-31 08:02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새로운 업무 수행자의 등장: AI 에이전트와 법적 공백2026년 1월 22일, 인공지능(AI) 기본법이 시행된다. 이 법은 AI를 '사용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 책임 체계로 운영하는가'를 핵심으로 삼는다. 진흥 중심의 느슨한 규제 체제를 택했지만, 국가AI전략위원회 격상과 최고AI책임자(CAIO) 의무화 등 거버넌스 체계는 오히려 강화되었다.

바로 이 시점에 금융권의 AI는 단순 조회·추천을 넘어 '업무 수행자'로 진화한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이 제시한 '에이전틱 AI'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동작하는 AI를 의미하며, 대출정 심사 보조, 자산 배분 실행, 이상거래 탐지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법적 공백이다. 현행 규제는 '사람'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어, AI가 수행한 경우의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 예컨대 이런 경우다. AI가 특정 직업군에 대해 낮은 신용점수를 부여했다면? 딥러닝 모델의 블랙박스 특성상 "왜 그런 판단을 했는가"를 설명하기 어렵다. ChatGPT API를 연동한 투자 자문 서비스가 할루시네이션으로 허위 정보를 제공했다면? AI를 이용한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발생하였다면 그 책임을 온전히 금융사에 물을 수 있는가, AI 모델 제공사에 있는가?

AI 에이전트가 업무 수행자로 진화할수록, 설명가능성, 기록성, 인간 개입 지점 설계가 분쟁의 핵심이 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2025년 8월 발표한 안내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지만, 금융 분야 특성을 반영한 구체적인 법적 기준은 여전히 부재하다. 결국 AI가 '무엇을 했는가'보다 '누가 그 결과에 책임지는가'를 잘 설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리적 차단에서 논리적 통제로: 망분리 규제의 철학적 전환2026년은 금융위원회의 망분리 개선 로드맵이 3단계(안착기)에 접어드는 시기다. 가칭 「디지털금융보안법」 제정을 통해 미시적 기술 규제가 원칙 중심 규제로 전환되는 법적 토대가 마련된다. 금융회사는 자체 리스크 평가에 기반하여 망 구성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며, 코어 뱅킹을 제외한 정보계 시스템과 계정계의 일부까지 논리적 망분리 기술 적용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IT 정책 변경이 아니다. 금융당국은 더 이상 '어떤 기술을 쓰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대신 금융사 스스로 제로트러스트, 클라우드 구성 관리 등의 논리적 통제 체계를 설계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온전히 책임을 지는 구조로 이동한다. 금융보안원이 제시한 2026년 10대 트렌드의 첫 번째 키워드가 '금융회사 주도적 보안'이라는 점은 이와 같은 철학적 전환을 보여준다.

법적으로 이는 "준수했는가"에서 "누가 책임지는가"로 질문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망분리 완화는 혁신을 가속화하지만, 동시에 제3자 의존도를 급격히 높인다. 클라우드 인프라 장애, OpenAI API 장애, 오픈소스 취약점 등 공급망 리스크가 금융 서비스 중단으로 직결되는 구조다. 통제 방식이 바뀌면서, 통제 불가능한 영역도 함께 늘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2026년 디지털금융 법제의 특징은 세부 규정보다 원칙과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전자금융감독규정 제00조를 준수했는가"를 물었다면, 이제는 "리스크를 식별하고 통제할 체계를 어떻게 설계했는가"를 묻는다.

AI 에이전트의 법적 지위는 불명확하고, 망분리 완화로 통제 불가능한 영역은 늘어났으며, 책무구조도는 복잡한 협업 구조를 포착하기 어렵다. 이러한 법적 공백과 불확실성 속에서 금융사는 스스로 책임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AI 의사결정에 대한 로그 기록 체계와 인간 개입 지점을 명확히 설계하고, 제3자 클라우드·SaaS 업체와의 계약서에 책임 분담 조항과 사고 대응 프로세스를 명시하며, 책무구조도를 실제 의사결정 구조와 일치하도록 정비해야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변화가 컴플라이언스나 IT 부서만의 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이 금융사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사회와 경영진 차원에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지가 중요한 경영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2026년은 이러한 새로운 책임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전환기가 될 것이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법무법인 태평양의 미래금융전략센터(센터장: 한준성 고문)는 2024년 5월 출범하여, 금융권 디지털 혁신 가속화와 금융 기술 발전에 발맞춰 가상자산·전자금융·규제대응·정보보호 등 금융 및 IT 분야 최정예 전문가들로 진용을 구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