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가 울려 퍼지는 타이타닉의 그랜드 로비, 잭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은 난생처음 연미복을 입고 로즈(케이트 윈슬렛 분)의 손에 입맞춤한다. 어린 시절 동네 극장에서 선망했던 영화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그림 그릴 종이가 전부였던 잭이 퍼스트 클래스 테이블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말했다. "순간을 소중히!"
당시 타이타닉 퍼스트 클래스 10코스 디너는 프랑스 벨에포크 시대의 화려함에 버금가는 영국 에드워드 시대의 호화로운 대서양 횡단 여행의 상징이었다. 애석하게도 샴페인 잔을 내려놓은 1912년 4월 14일 저녁 만찬을 끝으로, 타이타닉 퍼스트 클래스 테이블은 대서양 깊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때의 빛나는 다이닝 서비스 정신이 아직 살아있는 곳이 있다.
영국 '화이트 스타 라인' 선사의 플래그십 오션라이너, 타이타닉은 꿈의 배였다. 대서양 횡단 여행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20세기 초, 라이벌 선사 큐나드는 가장 빠른 오션라이너 '모레타니아'로 주목받고 있었다.
이에 맞서는 호화로운 시설과 서비스에 집중한 것이 타이타닉이었고, 세상은 속도보다 꿈같이 황홀한 여정에 주목했다. 타이타닉 침몰 이후 대공황과 세계 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화이트 스타 라인은 영국 정부에 의해 큐나드로 합병된다. 20세기 중반부터 급부상한 항공 여행의 발전으로 오션라이너는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지만, 큐나드는 오늘날 크루즈 산업에서 오션라이너 황금기를 추억하는 레거시 선사로 살아남았다. 타이타닉 퍼스트 클래스 다이닝 경험을 계승한 '화이트 스타 서비스'로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큐나드 크루즈다.
멜빵바지에 재킷도 없는 잭, 몰리 브라운 여사는 아들의 옷을 잭에게 빌려주며 말끔한 신사로 변신시켜준다. 8중주 오케스트라 연주의 환대와 함께 격식 있게 차려입은 사람들로 가득한 만찬장에 들어선 잭은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긴장했지만 주눅 들지는 않았다.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큐나드 크루즈는 엄격한 드레스코드를 지키고 있다. 타이타닉과 다른 점이 있다면, 큐나드 크루즈의 모든 클래스 승객들은 지정된 저녁 만찬 때 턱시도 같은 예복을 차려입어야 한다. 모두에게 퍼스트 클래스 다이닝 경험, 화이트 스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큐나드 '퀸 엘리자베스' 크루즈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직접 명명한 선박이다. 같은 이름의 1, 2세대 오션라이너에 이어 100년 가까이 여왕의 이름으로 축복을 받은 3세대 크루즈 선박이다. 그녀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퀸스룸' 무도회장에서는 퍼스트 클래스 애프터눈 티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샹들리에 아래에서 화이트 글러브를 낀 승무원들에게 화이트 스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호사인데, 객실 클래스에 상관없이 모두가 줄 서서 즐기는 서비스다. 무대에서는 왈츠 댄스 그룹레슨도 운영되는데, 누구나 잭처럼 긴장할 수는 있지만 주눅 들지 않고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퀸 엘리자베스 그랜드 로비는 타이타닉 퍼스트 클래스 로비만큼이나 우아하다. 오크 나뭇결의 따스함이 묻어난 인테리어 디자인은 오션라이너 황금기의 아르데코 스타일을 오마주 했다. 계단을 내려와 신사들이 숙녀들을 만찬장으로 에스코트하는 풍경은 타이타닉의 장면과 오버랩하고, 메인 브리타니아 레스토랑 입구에서는 현악 트리오의 앙상블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싱그러운 생화 장식과 함께 하얀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 위로는 바깥부터 안쪽으로 써야 하는 실버웨어들이 가지런하게 놓인다. 큐나드 크루즈는 미쉐린 스타 수석 셰프를 위시하는 미식 경험 팀을 꾸리고 있다. 선상에서 펼치는 조리 예술의 극치를 선사하기 위해서다. 애피타이저, 수프, 샐러드, 메인, 디저트로 구성된 5코스 디너에서 승무원들은 랍스터 살을 발라주는 등의 섬세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만찬을 준비한 셰프들과 브리타니아 레스토랑 크루 멤버들의 퍼레이드도 진행되는데, 다이닝 경험에 대한 화이트 스타 서비스의 진심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옛것에 대한 향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따스한 감정이다. 아름다운 시대로 기억되는 벨에포크 시대가 그렇듯, 에드워드 시대 대서양 횡단 여행에 대한 로맨스는 타이타닉 퍼스트 클래스 다이닝으로 기억되고 있다. TV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망망대해 선상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는 다이닝 경험이었다. 지금 봐도 감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시대의 다이닝에 대한 향수는 지나간 날에 대한 선망으로 다가온다. 현대의 일상을 살아가며 큐나드 크루즈에 승선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잭의 심정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순간을 소중히! 인류사의 우아한 다이닝은 계속돼야 하니까.
글·사진=류재도 파크앤비욘드 크리에이티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