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와 임차인이 같은 보험사에 화재보험을 든 상황에서 건물에 불이 나면 보험사가 임차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등을 제기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메리츠화재가 식자재 종합유통마트 운영회사 A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심 판결(원고 일부 승소)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022년 8월 A사 가게 수산물 코너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 수리 등에 6억9757만원이 소요됐다. A사와 건물주는 모두 메리츠화재 화재보험에 가입한 상태였다. 다만 A사의 책임 한도는 최대 5억원이었다.
메리츠화재는 A사 임차인 보험 계약에 따라 사실상 한도 금액인 4억9444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고 나머지 2억313만원은 건물주 보험으로 처리했다. 이후 메리츠화재는 A사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냈다. 상법 682조는 제3자에 의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사가 피보험자(또는 계약자)를 대신해 구상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 대위권을 인정하고 있다.
1심은 화재 사고에 대해 A사의 과실 비율을 70%로 보고 약 4억8830만원의 배상 의무를 인정했다. 임차인 보험으로 이보다 많은 약 4억9444만원이 지급됐으므로 구상금 청구를 기각했다. 2심은 A사 과실 비율을 60%(4억1854만원)로 낮추고 건물주 보험금의 60%에 해당하는 1억2187만원의 구상금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A사의 과실 비율을 2심 판단대로 60%로 확정하면서도, A사가 이미 이를 초과한 금액을 보험금으로 충당했기에 배상책임은 소멸했다고 결론 내렸다. 설령 보험사의 대위권 행사를 허용하더라도 A사가 같은 보험사의 책임보험에 가입한 상황에선 스스로에게 배상책임을 묻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A사 계약의 책임보험자가 원고(메리츠화재)인 이상 원고는 손해배상 청구권의 채권자인 동시에 채무자가 된다”며 원심에서 보험 대위권에 관한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고 판시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