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장에서 아티스트와 팬이 한목소리로 노래하는 '떼창'은 감정을 공유하고 그 순간을 만끽하는 최고의 행위다.
그렇다면 서로의 화음에 집중하며 목소리를 쌓는 '합창'은 어떨까. 지난 27, 28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잔나비(최정훈·김도형) 연말·연초 콘서트 '합창의 밤 2026, 더 파티 앤텀(The Party Anthem)'에서는 가수와 수천 명의 관객들이 합창으로 하나가 되는 진풍경이 그려졌다.
합창곡은 잔나비의 대표곡 중 하나인 '쉬(She)'. 메인 멜로디를 노래하는 최정훈의 목소리에 맞춰 관객들은 사전에 준비해 온 A, B, C 파트를 각각 나눠 불렀다. 일순간에 화음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단순히 목소리를 합치는 것에서 나아가 서로 마음을 잇고 단단한 연대감을 만끽하는, 강력한 '음악의 힘'으로 가득 찬 현장이었다.
'합창의 밤'을 공연 타이틀로 내건 잔나비는 공연장을 연말 분위기로 꾸몄다. 노을빛 조명 아래 고즈넉하지만, 화려한 샹들리에가 빛나는 공간. 따뜻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뚫고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Take Me Home, Country Road)', 엘비스 코스텔로의 '쉬(She)', '마이 웨이(My Way)' 등이 공연 시작 전 BGM으로 흘러나와 단번에 클래식한 분위기에 푹 젖어 들었다.
막이 오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밴드 세션 사이로 깔끔한 턱시도를 차려입은 잔나비가 등장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프론트맨 최정훈의 머리는 정갈하게 가르마를 탄 상태였고, 손에는 유선 마이크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내 잘 갖춰진 무드를 뚫고 짜릿한 기타 소리와 자유분방한 영혼이 공연장을 사방으로 휘젓기 시작했다.
첫 곡인 '나의 기쁨 나의 노래' 시작과 동시에 최정훈은 의자에 올라섰고, 그의 지휘에 맞춰 관객들도 함께 노래하며 웅장하게 무대를 완성했다. 이어 '서프라이즈!(Surprise!)'로 신나고 활기차게 분위기를 전환했고, 김도형의 힘 있고 격정적인 연주가 이어지며 장내 온도가 치솟았다. 오프닝부터 기립한 관객들은 열정적으로 응원법을 토해냈다.
'꿈나라 별나라', '조이풀 조이풀'까지 내달린 최정훈의 머리는 어느새 땀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관객들은 무대 위와 한마음이 되어 방방 뛰었고, 한 해를 열심히 달린 모두를 격려하고 축하하듯 컨페티가 시원하게 터졌다.
파워풀하게 포문을 연 후에는 차분하고 감성적인 무대로 몰입감을 높였다. '거울', '슬픔이여 안녕', '마더', '가을밤에 든 생각' 등 아름답고 시적인 가사가 내내 스크린에 띄워졌다. 최정훈의 섬세한 보컬, 장대한 밴드 연주에 맞춰 같이 가사를 읊조리다 보니 금세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가을밤에 든 생각'은 징글벨 멜로디를 넣은 편곡으로 특별한 재미를 안기기도 했다.
잔나비는 올해 정규 4집을 발매했고, 인디 밴드 최초로 KSPO DOME(올림픽체조경기장)에 입성하는 등 뜻깊은 한 해를 보냈다. 김도형은 "그 어느 때보다 2025년을 열심히, 바쁘게, 뜨겁게 살았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순간마다 여러분들이 같이 있어서 좋았다. 성공적인 한 해였다"며 "혹시라도 아쉬운 게 있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다 털어버리고 더 나은 2026년으로 나아가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명반으로 꼽히는 정규 4집의 곡들도 현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오리지널리티가 살아있는 컨트리 풍의 곡 '오 뉴욕시티'는 이날 뒷부분을 추가해 음원보다 긴 버전을 들려줬다. 올 한 해 소중한 순간을 많이 만들어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과 '합창의 밤'에서 재회한 현재 시점을 더해 '뉴욕 시티'를 '서울 시티'로, '엠파이어 스테이트'를 '63빌딩'으로 재미있게 개사해 박수받았다.
양희은이 참여했던 '잭케루악'은 최정훈이 전체를 소화하며 또 다른 신선함을 안겼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부를 땐 눈 내리는 무대에서 최정훈이 날카로운 고음을 울부짖듯 애절하게 소화해 감탄 섞인 환호가 길게 이어졌다.
정규앨범이 나오고 곡 수가 많이 늘어난 만큼, 잔나비 공연의 백미인 '모두가 점프하며 즐기는 구간'도 다소 변화가 생겼다. '투게더!'에 이어 '아 윌 다이 포 유(I WILL DIE FOR YOU♥x3)', '애프터스쿨 액티비티'가 나와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김도형의 화려한 기타 솔로 플레이를 엿볼 수 있는 구간까지 알차게 느낄 수 있었다. 이어 '굿 보이 트위스트(Good boy twist)', '사랑하긴 했었나요...', '정글(JUNGLE)'이 이어지며 관객들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특히 감동을 준 건 무대 간 연결성이었다. 곡의 흐름과 연출에서는 세트리스트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세심함이 느껴졌다. 이는 단순히 감동을 주는 걸 넘어서서 새로운 한 해로 나아갈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했다.
'뜨거운 여름 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은, '긴긴 여름밤은 가고 추운 겨울이 와도 / 여전히 음악은 우리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요'라는 메시지의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이어져 큰 울림을 줬다.
'모든 소녀 소녀들1 : 버드맨', '모든 소녀 소녀들2 : 무지개', '모든 소녀 소녀들3 : 글로리'까지 이어서 들어볼 수 있었다. 그간 꿈과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해오던 잔나비가 이번 앨범에서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여러 감상을 들게 했던 곡이 바로 '버드맨', '무지개'다. 평소 신나는 '알록달록'을 부르며 나타나던 무지갯빛 조명이 현실에 대해 말하는 '무지개'에서 등장하자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글로리'는 이들이 풀어낼 앞으로의 또 다른, 새로운 꿈을 기대케 했다. 무대 위와 아래가 하나 되어 '왓츠 업(What's Up)', '작전명 청춘!'까지 부르고 나니 2025년을 잘 보내주고, 2026년을 맞이할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겨났다.
공연의 피날레는 '몽키 호텔'이 장식했다. 잔나비는 "다 같이 모여서 울고, 웃고, 떠들고, 소리도 지르는 공연이라는 건 참 멋진 거 같다"면서 "2026년 멋진 새 출발 하실 수 있었으면 한다. 오늘을 오래 기억해 달라"며 공연을 마쳤다.
'합창의 밤 2026, 더 파티 앤텀'은 오는 1월 3, 4일 부산 벡스코제1전시장에서 이어진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