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이후 최악 분기 맞나…오라클, 인프라 투자 부담에 재무 리스크까지 [종목+]

입력 2025-12-27 08:57
수정 2025-12-2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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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 주가가 2001년 닷컴버블 붕괴 이후 최악의 분기를 향해 가고 있다. 새 최고경영자(CEO) 체제가 출범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부담과 재무 리스크가 동시에 부각되면서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h3>
26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오라클 주가는 이번 분기 들어 약 30% 급락했다. 분기 종료까지 거래일이 나흘 남은 상황에서, 이는 2001년 3분기 약 34% 하락 이후 가장 큰 분기 낙폭이 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들의 시선은 오라클이 챗GPT 운영사 오픈AI를 위해 대규모 서버팜을 추가로 구축할 수 있을지에 집중되고 있다. 서버팜이란 수많은 서버를 한곳에 모아 집단으로 운영하는 대규모 전산 설비를 뜻한다.
오픈AI는 지난 9월 오라클과 3000억달러 이상을 지출하는 계약에 합의했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막대한 자본 투자가 오라클의 재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달 초 오라클은 시장 기대를 밑도는 분기 매출과 잉여현금흐름을 발표했다. 실적 발표에서 새로 선임된 재무 책임자 더그 케어링은 2026회계연도 자본지출 규모를 500억달러로 제시했다. 이는 9월 계획 대비 43% 늘어난 수준이자, 전년 대비 두 배에 달한다. 여기에 데이터센터 건설 외에도 클라우드 역량 확대를 위해 2480억달러 규모의 리스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공격적인 투자 계획은 대규모 차입 없이는 실행이 어렵다. 오라클은 이미 9월에 180억달러 규모의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회사는 투자등급 신용등급 유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신용부도스왑(CDS) 가격이 오르며 우려가 반영되고 있다. D.A. 데이비드슨은 “오라클이 오픈AI 계약을 재조정하지 않는 한 재무적 의무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 CEO인 클레이 마구이르크와 마이크 시실리아가 취임하기 직전, 오라클은 오픈AI 계약을 중심으로 매출 백로그가 359%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뒤 주가는 9월 한 달 동안 약 36% 급등하며 장중 345.72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주가는 고점 대비 40% 이상 하락했다.

일부 장기 투자자들은 이를 ‘건강한 조정’으로 본다. 자산운용사 론치스 애셋 매니지먼트는 “사업의 본질적 경제성이 훼손되지 않았다면 단기 고평가는 감내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과 관련해 “지난 수십 년간 엘리슨에게 반대로 베팅해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며 신뢰를 보이고 있다.

다만 시장의 시각은 엇갈린다. 오라클은 AI 인프라를 중심으로 2030년 매출을 2250억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고마진의 기존 소프트웨어 사업 비중 축소를 의미한다. 시장에서는 오라클의 매출총이익률이 2021년 77%에서 2030년에는 50% 안팎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흑자 전환 역시 2029년 이후로 예상된다.

또 다른 변수는 오픈AI에 대한 높은 의존도다. 오픈AI는 대규모 현금 소모 구조 속에서 1조4000억달러가 넘는 AI 인프라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수요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가에서는 “오라클의 신뢰 회복은 AI 인프라 구축을 실제로 이행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최대 규모의 AI 학습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면, 오라클은 다시 성장 스토리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