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미국 내 특허소송은 지난해 117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직접 제소하는 비중도 3분의 1을 넘어서면서 방어적 대응을 넘어 ‘공세적 제소’가 구조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주목할 점은 이 가운데 중소기업이 연루된 소송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특허소송은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 모두가 직면한 현실이 됐다.
첨단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은 한류 확산과 맞물려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이와 함께 기술 유출과 침해 위험 또한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위험에 대응할 제도적·실무적 기반이 충분한지다. 수출을 앞두거나 해외 시장에 진출한 기업의 지식재산 분쟁 대응 역량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기업은 기술 침해 입증과 손해액 산정 과정에서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다. 기술보호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술 침해를 경험했거나 의심된다고 응답한 기업 다수는 증거 확보의 어려움으로 법적 대응에 나서지 못했다. 분쟁 과정에서 상대방의 매출·생산·거래 자료 등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핵심 증거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도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수단의 부재가 권리 행사의 가장 큰 걸림돌임을 보여준다.
이런 입증 구조의 차이는 손해배상 수준의 격차로 이어진다. 미국은 디스커버리 제도를 통해 침해 범위와 손해액 관련 증거 접근이 보장되는 데 비해 한국은 권리자가 이를 스스로 부담한다. 그 결과 특허침해 손해액 중간값은 국내총생산(GDP)을 감안하더라도 한·미 간 약 9배의 차이를 보이며, 이는 침해 책임 추궁과 억제 신호의 강도 차이를 반영한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한국형 디스커버리(증거개시)’ 도입을 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매우 고무적이다. 증거개시는 침해 여부와 손해 규모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상대방이 보유한 경우 법원이 파견한 전문가의 사실조사를 통해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권리자에게 과도하게 전가되던 입증 책임 부담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수년간 계류된 특허법 개정안 역시 조속한 입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아울러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 중인 기술침해 손해액 산정 지원사업도 주목할 만하다. 향후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연구개발(R&D) 투자액 등 실질적 손해를 반영하도록 관련 법령에 손해액 산정 규정을 신설하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기준이 존재함에도 재판에서는 법원 재량에 따른 ‘상당한 손해액’만 인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증거개시 제도와 손해액 산정의 현실화가 결합된다면 기술 보호 작동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이제는 국내 분쟁에 한정된 지원을 넘어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도 당당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공인 전문기관에 의한 기술가치평가와 손해액 산정 지원이 필요하다. 특허 4위 국가에 걸맞은 소송 환경, 권리자가 실질적으로 보호받는 구조를 갖추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기술로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 기업의 발걸음에 제도가 제대로 따라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