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전쟁 전면전…전기차 안전 대폭 높일 중희토류 개발 착수

입력 2025-12-26 17:06
수정 2025-12-26 23:35

지난 8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H사. 원래 다이캐스팅(녹은 금속 주입)으로 부품을 만드는 뿌리산업 기업이었으나 2차전지 양극재 전구체인 황산니켈 제조기업으로 변신한 후 상장에 성공했다. 기업가치 상승 과정에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국가희소금속센터가 적잖은 역할을 했다. 생기원 희소금속센터는 니켈 원료로부터 니켈을 회수(제련)해 황산니켈을 제조하는 기술을 H사에 전수했다. H사 외 다수 상장 기업이 생기원 희소금속센터로부터 기술을 이전받거나 전문가를 영입하고 있다.

생기원 희소금속센터는 정부가 지정한 국가연구실(N-랩) 20여 곳 가운데서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다. 없던 기술을 창출해 국내 기업에 이전하는 ‘혁신 연구소’의 롤 모델이 됐기 때문이다. 35종 공급망 불안에 대처 희소금속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연일 급증하지만 공급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생기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 기준 중국이 희토류 공급망의 63%, 텅스텐(W)은 83%를 장악했다. 코발트(Co) 매장 및 생산은 아프리카 콩고에 70%, 백금족 원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55%가량 집중돼 있다.

현재 한국 정부가 지정한 핵심 희소금속은 15종이다. 반도체·2차전지산업 소재로 국민들에게 친숙한 실리콘(Si)과 2차전지 소재로 잘 알려진 니켈(Ni), 리튬(Li) 등 13종, 희토류(17개 원소), 백금족(6개 원소)을 포함한다. 여기에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조인트벤처(JV)를 세워 주목받고 있는 고려아연이 생산하는 안티모니(Sb) 등 일반 희소금속 20종을 합쳐 총 35종을 국가가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생기원 희소금속센터는 이 35종이 지정된 2009년부터 희소금속 개발 역사를 써 왔다.

생기원 희소금속센터는 희소금속 특화 공정장비 35종과 특수 분석장비 55종을 갖고 있다. 원석 등 광물이나 전자제품 등을 들여와 녹이는 용해부터 제련, 정련, 고순도화, 재활용 등에 걸쳐서다. 유도결합플라스마(ICP)로 시료를 이온화한 뒤 전·자기장에 투과시켜 원소를 분석하는 ICP-MS 장비, 시료에 X선을 쏠 때 방출되는 형광에너지 분포 데이터로 원소를 분석하는 XRP 장비 등이다. 핵심 희소금속 특허 다수 확보생기원 희소금속센터는 국내에서 처음 탄탈륨(Ta) 제련 및 정련과 분말 처리, 응용 소재까지 이어지는 일관공정 기술을 개발했다. 핵심 희소금속 15종 중 하나인 탄탈륨은 녹는점이 3000도 이상, 끓는점이 5500도에 달하는 난융(難融) 금속이다. 광물에서 분리하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렵다. 반도체 공정에서 플라스마 식각(에칭)이나 초고온 내식성능이 필요한 디펜스테크산업 부품 소재 등으로 쓰인다. 그간 원료와 중간 소재뿐 아니라 최종 제품 전량을 해외에 의존해 왔다.

생기원 희소금속센터는 전자빔 용해 등으로 순도 99.999% 탄탈륨 제조 기술을 개발해 특허(IP) 9건을 취득했다. 외국에서 들여온 탄탈륨 상용 제품보다 경도, 열전도도 등 주요 물성이 좋아 ‘기술의 독자성’을 인정받았다. 탄탈륨 내 불순물 함량 역시 상용 제품 0.04%보다 한참 적은 0.003%를 달성했다. 이들 기술은 전용실시권 형태로 코스닥시장 상장사 비씨엔씨에 이전됐다. 비씨엔씨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뿐 아니라 대만 TSMC, 일본 소니와 키오시아, 미국 인텔과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독일 인피니언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고객사로 뒀다.

생기원 관계자는 “확보한 탄탈륨 일관공정 기술은 반도체 스퍼터링 타깃, 초내열·내마모부품 등 다양한 첨단 산업 분야에서의 활용이 기대된다”며 “장기적으로 국내 희소금속 공급망 안정과 수입 의존도 저감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H사와 G사 역시 생기원 희소금속센터 지원을 받았다. H사는 인도네시아산 니켈 선철에서 니켈을 회수해 상용 2차전지에 쓸 황산니켈을 제조하는 공정을 확보했다. 희소금속센터에 입주한 G사는 희토류인 이트륨(Y) 정제 및 재생 공정을 개발했다. “중간(middle) 공정 기술 확보 필요”희소금속센터가 최근 개발 역량을 모으고 있는 원소는 네오디뮴(Nd), 디스프로슘(Dy) 등 중희토류다. 일시적 휴전 상태로 들어갔지만 미국과 중국이 지난 10월 희토류 공급망 제재 여부를 두고 가장 예민하게 맞붙은 이슈라서다.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영구자석은 네오디뮴과 철, 붕소를 섞어 만드는데 전기차 모터의 내열 성능을 끌어올려 안전성을 더 높이려면 디스프로슘을 넣어야 한다. 상용 수준의 디스프로슘을 생산하는 곳은 세계에서 중국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지분을 매입한 기업 MP머티리얼스와 호주의 대표 희소금속 기업 라이너스도 갖지 못한 기술이다. 폐영구자석이나 희토류 산화물 등에서 회수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효율이 낮다.

생기원 관계자는 “모빌리티용 희토류인 네오디뮴과 디스프로슘은 고순도 원료를 확보해 고부가가치 소재로 만드는 기술이 국내에 전무하다”며 “이 같은 기술 병목을 해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저순도 원료를 해외에서 들여와 불순물을 제거해 제품으로 만드는 전방, 후방 기술은 있지만 ‘중간 단계’ 기술이 전혀 없다는 설명이다. 반도체용 희소금속인 텅스텐(W), 몰리브덴(Mo), 티타늄(Ti) 등이나 에너지용 희소금속인 리튬, 코발트, 니켈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