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 노디스크가 이른바 '먹는 위고비'로 불리는 경구용 비만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으면서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의 경쟁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 주사제가 주도해온 GLP-1 계열 시장이 이제는 복용 편의성을 앞세운 제형 혁신 경쟁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26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노보 노디스크는 이르면 다음 달 초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 25mg 제제인 '리벨서스'를 미국 시장에 먼저 선보일 예정이다. 이 제품은 성인 과체중·비만 환자의 체중 감소와 유지, 심혈관계 주요 이상 사건(MACE) 위험 저감을 적응증으로 승인받았다. 비만 치료 목적의 GLP-1 계열 약물 가운데 먹는 형태로 허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FDA 승인 근거가 된 'OASIS 4' 임상시험 결과를 보면, 투여군의 평균 체중 감소율은 16.6%에 이르렀고, 참가자 3명 중 1명은 체중의 20% 이상을 감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보 노디스크는 이러한 효과가 기존 주사형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와 비만 치료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일라이 릴리는 소분자 기반 경구 GLP-1 후보물질 '오포글리프론'을 앞세워 맞불을 놓고 있다. 펩타이드가 아닌 소분자 합성의약품인 이 후보물질은 냉장 유통이 필요 없고, 제조 공정이 단순해 생산성과 유통 효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식사 시간과의 연계 부담이 적어 복약 편의성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상 3상 'ATTAIN-1'에서는 최고 용량을 72주간 투여한 환자군에서 평균 11% 이상의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됐다. 또 다른 3상 시험인 'ATTAIN-MAINTAIN'에서는 주사제로 체중을 줄인 뒤 오포글리프론으로 전환한 환자들이 감량 효과를 안정적으로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릴리는 이미 FDA에 허가 신청을 마쳤고, 우선심사 바우처를 확보해 심사 기간 단축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국 바이오 기업 스트럭처 테라퓨틱스 역시 소분자 GLP-1 후보물질 '알레니글리프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공개된 임상 2b상 결과에서 고용량 투여군은 36주 만에 최대 15%의 체중 감소를 기록했다. 소분자 제제임에도 주사형 치료제에 근접한 효과를 보였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동안 비만 치료제 개발에서 물러나 있던 화이자도 재도전에 나섰다. 미국 바이오기업 인수에 이어 중국 포순제약 계열사와 대규모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하며 소분자 GLP-1 후보물질을 확보했다. 해당 물질은 현재 호주에서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 종료가 예상된다.
이 밖에 로슈는 경구용 GLP-1 후보물질 'CT-996'을 임상 1상 단계에서 개발 중이며, 아스트라제네카도 경구용 GLP-1 치료제 'AZD5004'로 글로벌 임상 2·3상을 병행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도 복용 편의성을 무기로 한 신제형 비만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동제약, 종근당, 셀트리온 등은 경구용 GLP-1 기반 후보물질 연구에 착수했고, 대웅제약은 주사와 알약이 아닌 패치형 제형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대웅제약이 개발 중인 제품은 하루 한 번 피부에 부착하는 방식의 GLP-1 수용체 작용제로, 경피 약물 전달 시스템(PTD)을 활용한다. 주사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약물 농도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1상 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으며 본격적인 임상 단계에 진입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