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의 대표 공항은 워싱턴 덜레스 공항이다. 덜레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미국 측 대표 조인자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6년간이나 국무장관을 지낸 그는 1959년 암으로 사직한 뒤 한 달 만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긴 아이젠하워의 지시로 신공항에 이름을 붙여 기념하도록 했다.
워싱턴 덜레스 공항이 개항한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인 1962년. 그 케네디가 1963년 11월 암살당했고, 미국 전역이 비탄에 잠겼다. 추모 캠페인의 일환으로 주요 시설물 이름을 그의 이름으로 바꾸는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플로리다의 우주기지는 케네디 서거 1주일 만에 ‘발사운영센터’에서 ‘케네디우주센터’로, 뉴욕의 관문 JFK국제공항은 공항 개항 전의 골프장 이름을 딴 아이들와일드공항에서 서거 한 달 만에 현 이름으로 바뀌었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우리는 이름을 통해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자주 이용하는 시설물에 붙인다. 프랑스 파리의 샤를드골공항, 베트남 사이공의 현재명인 호찌민시 등은 국부에 대한 존경심에서 우러나왔다. 그러나 사후 추모가 아니라 현재 권력자의 이름을 공공장소에 붙이는 것은 독재를 위해 추앙을 강요하는 행위다. 스탈린이 권력을 잡은 뒤 출세 기반이 된 도시를 스탈린그라드로 바꾸고, 사담 후세인이 고향에 자기 이름의 초대형 사원을 짓고, 김일성 생전에 대학·광장·거리는 물론 꽃 명칭에까지 그의 이름을 갖다 댄 것이 다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명명 집착(naming obsession)’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워싱턴DC의 대표적 문화예술 공간인 케네디센터를 ‘트럼프-케네디센터’로 바꾸기로 하자, 미국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인 케네디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얹어 브랜드 장악에 나섰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스탈린그라드나 사담 후세인 이름의 이슬람 사원은 그들이 실권한 뒤 모두 본래 이름으로 돌아왔다. 트럼프가 이런 개명 작업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지 의문이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