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그제 자사 뉴스룸을 통해 ‘반도체 공장 투자 관련 설명문’을 게시하며 대국민 호소에 나섰다. 정부가 추진 중인 첨단산업 투자 규제 완화를 두고 일각에서 ‘특정 기업 특혜’라는 비판을 제기하자 반도체산업의 애로를 설명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투자 골든타임을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총투자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19년 클러스터 조성 발표 당시 120조원으로 추산한 총투자액은 인공지능(AI) 혁명과 공정 미세화로 인해 현재 600조원 이상으로 5배나 급증했다. 이제 반도체 투자는 개별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국가 간 ‘쩐의 전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수백조원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기존처럼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면 신용도가 추락한다. 대신 유상증자를 하면 기존 주주들의 반발에 맞닥뜨려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둘 때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는 현행 공정거래법 조항은 시대착오적 규제다. 미국 인텔 등 글로벌 경쟁사들이 외부 투자자와 합작법인(SPC)을 세워 투자 위험을 분산하고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은 사례를 봐도 차별적인 족쇄다. 우리 기업들만 낡은 규제에 묶인 채 글로벌 전장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각의 특혜 주장 역시 근거가 빈약하다. 이번 규제 완화는 특정 기업을 밀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반도체산업이 AI 시대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SPC는 공장 건설을 위한 한시적 법인일 뿐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거나 금융업 진출을 노리는 수단은 아니라는 회사 측의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오히려 외부 자본을 유치해 국민과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새로운 투자 모델이 될 수 있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경제의 버팀목이다. 미·중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재편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내부의 소모적인 특혜 논란으로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정부와 국회는 소중한 반도체산업이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규제 완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