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내세우던 중국의 굴욕…"불안해서 못 쓰겠다"

입력 2025-12-25 17:58
수정 2025-12-26 00:42
중국 국유 중국상용항공기공사(코맥·COMAC)의 올해 주력 여객기(C919 기종) 판매량이 연초 목표의 2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미국 보잉, 유럽 에어버스에 맞먹는 ‘여객기 시장 빅3’를 노리고 있지만 현실은 딴판인 것이다. 중국이 거의 모든 제조업에서 세계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왔지만 유독 ‘항공 굴기’(우뚝 일어섬)는 지지부진하다. 주요 부품을 미국 기업 등에 의존하고 있는데 미·중 갈등 여파로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은 데다 ‘중국산 여객기’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인도 목표 미달
25일 항공 컨설팅 업체 시리움에 따르면 코맥은 올 들어 지난 22일까지 C919 항공기를 13대 인도했다. 이는 지난해 인도 물량과 같은 수준이다. 코맥은 당초 올해 C919를 75대 인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보고 이를 25대로 낮췄는데 이마저도 맞추지 못한 것이다. 중국 3대 국적 항공사인 에어차이나, 중국남방항공, 중국동방항공이 C919를 총 32대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실제 이들이 넘겨받은 여객기는 12대에 그쳤다.

코맥은 올해 3월 C919를 포함한 전체 항공기 생산량을 내년 100대로 늘리고 2027~2028년에는 연간 150대, 2029년부터는 연 200대를 제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달 주주에게 440억위안(약 9조1000억원)의 자본을 수혈받았다. 하지만 C919 외에 소형 항공기 C909까지 합쳐도 올해 인도량은 50대 안팎으로 작년 수준(C919 13대, C909 32대)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장기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것이다. ◇핵심 부품, 외국산에 의존중국은 에어버스와 보잉이 양분해온 세계 항공기 시장에서 ‘중국판 보잉’을 키우겠다는 목표 아래 코맥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다. 기존 양강 구도를 깨고 ‘ABC(에어버스·보잉·코맥) 3강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코맥은 에어버스, 보잉보다 저렴한 가격과 연비 효율을 강점을 내세웠다. 전 세계 주요 항공사가 신형 기체 확보에 나서고 있는 점은 코맥에 기회 요인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코맥은 존재감이 없다. 내수 시장인 중국에서조차 코맥 위상은 약하다. 올해 중국 항공기 시장 점유율은 에어버스가 53.7%, 보잉이 39.4%를 차지하는 반면 코맥은 3.5%에 불과하다.

올해 코맥이 부진한 핵심 원인은 엔진 공급 문제였다. C919에 들어가는 엔진은 미국 GE에어로스페이스와 프랑스 사프랑 간 합작사인 CFM인터내셔널 제품으로 미국의 수출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코맥은 소형 항공기 C909에도 GE에어로스페이스 계열 엔진을 사용한다. 미국이 7월 CFM과 GE에어로스페이스 엔진에 수출 허가를 재개했지만 언제 다시 수출이 막힐지 모른다. 항공기에 들어가는 각종 핵심 부품도 상당 부분 외국산인 게 현실이다. 예컨대 C919 항공기에 쓰이는 보조 동력 장치, 바퀴, 브레이크는 미국 허니웰, 비행 기록 장치는 GE에어로스페이스, 연료·유압 시스템은 미국 파커, 랜딩기어는 독일 립헬에 의존하고 있다. ◇안전 인증도 시간 걸릴 듯인증 문제도 넘어야 할 과제다. C919는 2023년에야 상업 운항을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 규제당국에서 안전 관련 인증을 받지 못한 상태다. 2028년 이전에 인증을 받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이에 따라 코맥은 해외 시장 진출이 쉽지 않다. 그 대신 중국 내수 시장과 일부 지역 노선에 집중하고 있다.

항공기 운항 시간도 아직은 보잉이나 에어버스에 못 미친다. 하루평균 운항 시간은 C909가 3.4시간, C919가 2.6시간이다. 여객기 평균인 하루 7시간과 거리가 있다. 다만 중국 정부 및 국유 항공사의 전폭적인 지원과 방대한 내수 시장은 코맥의 강점이다. 항공 시장 자문업체 IBA는 “코맥이 단기간에 에어버스, 보잉과 같은 규모로 성장하기는 어렵겠지만 정치적 지원과 강한 내수 수요를 바탕으로 글로벌 항공 산업에서 점진적으로 존재감을 키워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