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3, AI 시대에 외친 ‘기술 위의 철학과 예술성’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입력 2025-12-29 09:56
수정 2025-12-29 09:57


“인공지능(AI)은 단 1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12월 17일 개봉한 ‘아바타: 불과 재’의 상영 시간은 3시간 17분에 달한다. 이 영화 한 작품에 시각효과(VFX)가 들어간 쇼트는 무려 3382개다. VFX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장면은 7개에 불과하다. 시간으로는 11초밖에 되지 않는다. 수많은 VFX 작업은 지난 4년간 3000여 명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직접 참여해 진행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이 복잡한 작업을 AI 시대에 AI로 했다면 훨씬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영화를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를 철저히 거부했다. 몇 줄의 프롬프트로 영상을 완성하는 쉬운 길 대신 많은 인력, 엄청난 시간과 비용, 고도의 기술력을 동원해야 하는 험난한 길을 고집했다. 그 결과물에 해당하는 ‘아바타: 불과 재’는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구현하며 관객들을 순식간에 판타지의 세계로 빨아들인다.

‘아바타’의 세 번째 시리즈 ‘아바타: 불과 재’는 AI 시대에 AI는 미처 따라갈 수 없는 인간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증명해 보인다. AI 기술을 부정하는 카메론 감독은 사실 영화사를 통틀어 봤을 때 누구보다 기술을 적극 활용한 인물로 꼽힌다. VFX 기술을 접목한 3D 입체 영화로 새로운 세상을 펼쳐 보이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안에서도 AI와는 다른 위대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카메론 감독은 미국 CBS 시사프로그램 ‘선데이 모닝’과의 인터뷰에서 “수년간 컴퓨터로 일을 하면서 (기술이) ‘배우들을 대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배우와 감독의 순간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에서 기술이 전부가 될 수 없으며 그 중심엔 반드시 배우와 감독, 즉 연기와 연출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아바타’ 시리즈는 AI 시대에 AI 없는 영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에 오프라인 공간인 극장의 가치를 역설한다.
22년 동안 펼쳐질 대서사시

2009년 처음 나왔던 ‘아바타’ 시리즈는 세계 영화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다. 영화는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흑백 영화에서 컬러 영화로 변화하며 크게 발전했다. 그리고 2D 평면 영화 이후 3D 입체 영화가 개발되며 관객들은 스크린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아바타’ 시리즈 이전에도 3D 영화는 있었다. 하지만 어색함, 이질감으로 많은 관객을 동원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메론 감독은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내세워 이를 극복했다. 3D 안경을 쓰고 ‘아바타’ 시리즈를 보면 마치 영화 속 세상에 빨려 들어간 느낌이 든다. 푸른 바다와 넘실대는 물결, 강렬한 불의 토네이도와 불티를 실제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이 같은 특별한 몰입감은 흥행 요소로 작용했다. 덕분에 ‘아바타’ 1편은 개봉 후 1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역대 글로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바타’ 시리즈의 대표 기술은 ‘퍼포먼스 캡처’에 해당한다. 배우들은 슈트를 입고 카메라가 달린 헬멧을 뒤집어쓰고 연기를 한다. 그러면 적외선카메라가 배우들의 움직임과 표정을 고스란히 포착하고 실시간 전송한다.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표현까지 잡아낼 수 있어 관객들은 파란 피부의 아바타를 보더라도 친근하게 느끼고 공감하게 된다. 여기에 카메론 감독은 대형 수중 세트까지 만들어 그 안에서 배우들이 더욱 집중해서 연기하도록 도왔다.

‘아바타’ 시리즈가 달성한 것은 시각적 진화만이 아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거대하고 탄탄한 세계관을 탄생시켰다. 영화엔 신비로운 행성 ‘판도라’, 인간과 나비족의 DNA가 결합된 ‘아바타’ 등 새로운 개념과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인간의 탐욕과 자연 파괴, 제국주의와 생태주의 등 다양한 정치적·철학적 주제도 다뤄진다. ‘아바타’ 시리즈가 2009년부터 2031년까지 총 22년에 걸쳐 이어질 수 있는 비결도 여기에 있다. ‘아바타’ 2편은 1편이 개봉한 지 13년이 지난 2022년에, 3편은 3년 만인 2025년에 나왔다. 4편은 2029년, 5편은 2031년에 개봉할 예정이다. 만약 이 시리즈가 기술력 하나만 내세운다면 첨단기술의 시대에 굳이 많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그 안에 담긴 신비로운 세계관, 깊이 있는 철학과 예술성을 탐닉하고 싶어 오랜 시간을 이 영화와 함께 보내고 즐기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인간의 손과 극장 스크린으로

5편 가운데 딱 중간에 해당하는 ‘아바타: 불과 재’는 과도기적 작품인 동시에 앞으로 이 영화의 발전 가능성과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2편이 개봉됐던 2022년만 해도 영상 시장에 AI가 본격 침투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3편 개봉까지 3년의 시간 동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장르를 불문하고 영상 시장 곳곳에 AI 기술이 접목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젠 AI 자체로 만든 영화도 속속 개봉하고 있다. 또 한편에선 코로나 이후 회복될 것이라 예상됐던 극장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OTT 중심으로 영상 소비가 일어나며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AI와 OTT로 인해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서 카메론 감독이 3편을 만들며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이 영화로 반드시 증명해 보이고 싶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인간의 손으로만 할 수 있는, 극장에서 꼭 봐야만 하는 작품이 있다고.

물론 ‘아바타’ 시리즈의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할 순 없다. 특히 ‘아바타: 불과 재’의 서사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잦은 인질극과 공습 등 반복적인 서사, 가족주의의 지나친 강조 등에 대한 지적도 많다. 하지만 그 안에서 3편만의 특별한 가치도 찾을 수 있다.

3편의 이야기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한 축은 주인공 제이크 설리 가족의 슬픔과 갈등, 그리고 치유에 대한 이야기다. 또 다른 축은 인간-나비족의 충돌, 나비족 내부의 충돌이다. 우선 가족 서사는 2편에 이어 더욱 심화된다. 나비족인 제이크 설리 가족은 전편에서 인간의 공습으로 큰아들을 잃었다. 이에 따라 3편에선 가족들의 슬픔과 그리움이 갈수록 커지게 되고 둘째 아들 로아크와의 갈등, 입양한 인간 아들 스파이더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도 함께 깊어진다. 가족주의 역시 전편에 비해 훨씬 강조된다. “설리 가족은 하나”, “설리 가족은 포기하지 않는다”와 같은 대사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는 낡고 오래된 가치로 회귀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가까운 사람을 저버리지 않고 귀하게 여겨야 하며 나아가 함께 연대해야 한다는 고유의 메시지를 시리즈 전체에서 일관되게 가져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리고 3편에선 갈등 구조를 확장했다. 인간과 나비족의 충돌에만 국한하지 않고 나비족 내부에서 적을 만들었다. 영화 제목의 ‘불과 재’ 자체도 불을 사용하는 ‘재의 부족’ 망콴족과 연결된다. 망콴족 역시 나비족에 해당하지만 이들은 다른 부족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약탈을 일삼는다. 나아가 인간을 도와 다른 부족을 공격하고 막강한 힘을 가지려 한다. 이같이 3편에선 갈등 구조를 다양하고 복잡하게 설계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5년 ‘올해의 단어’로 ‘슬롭(Slop)’을 선정했다. 슬롭은 ‘음식물 찌꺼기’란 뜻이다. 오늘날엔 AI로 만들어진 저품질 콘텐츠가 온라인상에 범람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AI 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영상 시장에서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시간과 비용 절감 등의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하지만 AI가 주는 편리함에만 기댄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고 어떤 감동도 없는 저품질 콘텐츠만 양산될 수 있다. 우리가 ‘아바타’ 시리즈에서 발견한 ‘기술 위의 철학’, ‘기술 위의 예술성’이란 메시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