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가속 칩 스타트업 그록의 자산을 약 20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엔비디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다.
24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이번 거래는 그록의 최근 투자 라운드를 주도한 디스럽티브의 최고경영자(CEO) 알렉스 데이비스가 밝혔다. 엔비디아는 고성능 AI 가속 칩을 설계하는 그록의 자산을 현금 200억달러에 매입한다.
그록은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를 개발한 엔지니어들이 2016년 설립한 회사로, 엔비디아의 GPU와 경쟁하는 AI 추론용 칩을 개발해 왔다. 그록은 지난 9월 약 69억달러 가치로 7억5000만달러를 조달했으며, 블랙록, 노이버거버먼, 삼성, 시스코, 알티미터, 1789캐피털 등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그록은 이날 블로그를 통해 이번 거래를 “엔비디아와의 비독점 라이선스 계약”이라고 설명했다. 가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록의 창업자이자 CEO인 조너선 로스와 사장 서니 마드라를 포함한 주요 임원진은 엔비디아에 합류해 사용권을 확보한 기술의 확장과 고도화를 지원할 예정이다.
다만 그록은 법인 자체를 매각한 것은 아니며, 사이먼 에드워즈 최고재무책임자(CFO)가 CEO를 맡아 독립 회사로 존속한다고 밝혔다. 그록의 클라우드 사업인 ‘그록클라우드’도 이번 거래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엔비디아의 코렛 크레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거래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이번 인수는 엔비디아의 사상 최대 거래다. 이전 최대 인수는 2019년 이스라엘 칩 설계업체 멜라녹스를 약 70억달러에 인수한 건이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10월 말 기준 606억달러의 현금 및 단기 투자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그록의 저지연 프로세서를 엔비디아 AI 팩토리 아키텍처에 통합해, 실시간 AI 추론과 다양한 워크로드를 더 폭넓게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그록이라는 회사를 인수하는 것은 아니며, 인재와 지식재산(IP)을 라이선스 형태로 확보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엔비디아는 최근 유사한 방식의 거래를 잇달아 진행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AI 하드웨어 스타트업 엔패브리카(Enfabrica)의 CEO와 핵심 인력을 영입하고 기술 라이선스를 확보하는 데 9억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도 최근 몇 년간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AI 핵심 인재 영입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엔비디아는 현금 보유가 늘어나면서 AI 칩 스타트업과 생태계 전반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AI·에너지 인프라 기업 크루소, AI 모델 개발사 코히어에 투자했고, AI 특화 클라우드 업체 코어위브에 대한 투자도 늘렸다.
엔비디아는 지난 9월 오픈AI에 최대 1000억달러 투자 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오픈AI는 최소 10기가와트(GW)의 엔비디아 제품을 도입하기로 약속했으나, 공식 계약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다. 같은 달 인텔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50억달러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그록은 올해 AI 가속 칩 수요 급증을 배경으로 매출 5억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엔비디아의 인수 제안을 받기 전까지는 매각을 추진하지 않고 있었다고 데이비스는 전했다.
한편 AI 칩 시장에서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세레브라스 시스템즈는 올해 상장을 추진했다가 10월 IPO를 철회했으며, 대규모 자금 조달 이후 상장 재추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