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영업이익(12억6600만달러)은 전년 대비 67.7% 급감. 지난해엔 38억2900만달러 영업손실로 전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의 대형 고객사 확보 실패.’ 인텔의 2023~2024년 사업 성적표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텔은 300억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최근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텔의 비결은 ‘외부 투자자 유치’였다. 인텔은 2022년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의 최첨단 생산시설(팹52) 투자를 위해 자산운용사 브룩필드와 합작법인(인텔 51%, 브룩필드 49%)을 설립했다. 기술·운영 주도권은 유지하면서도 자본 부담과 투자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 덕분에 인텔은 올 3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애플 등 미국 고객사와 협력 논의를 재개했다.
이런 ‘묘수’는 금산분리 규정이 있는 한국에선 아직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으면 즉각 도태되는 반도체 사업 특수성을 이해한 이번 정부가 지난 19일 지주회사의 지분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한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보유해야 하는 증손회사의 의무 보유 지분율을 100%에서 50%로 낮추고, 증손회사인 특수목적회사(SPC)에 금융리스업을 허용해 주기로 한 것이다. 이 방침이 시행되면 인텔처럼 SK하이닉스가 SPC의 50%를 보유하고 나머지 50%는 펀드 등 다른 투자자가 지분을 갖는 구조로 반도체 공장에 투자할 수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SK하이닉스를 도와주는 ‘대기업 특혜’라고 비판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24일 ‘반도체 공장 투자 관련 설명드립니다’란 제목의 해명글을 홈페이지에 게시한 이유다.
SK하이닉스는 게시글에서 “기술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경기 상황과 관계없이 선제적이고 연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국가 전략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는 규제 완화”라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클린룸 3만3000㎡ 기준의 투자비는 2019년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발표 당시 약 7조5000억원에서 물가와 인건비 상승, 고환율 등으로 올해 10월 말 문을 연 충북 청주 M15X에서는 20조원 수준으로 늘었다. 이르면 2027년 상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첨단 공장 4기가 가동되는 용인 클러스터 총투자액도 기존 120조원에서 현재 ‘600조원 이상’으로 급증했다.
SK하이닉스는 “초대형·장기 투자가 요구되는 환경에선 과거 방식의 분명한 제약이 존재한다”며 “차입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경기 변동 때 재무 부담이 급격히 확대될 수 있으며, 이는 투자 지속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금산분리 무력화 우려에 대해선 “SPC는 반도체 공장 같은 대규모 생산시설에 투자하고 임대하기 위한 한시적 구조”라며 “금융상품 판매나 자산 운용과 달리 투자 목적이 달성되면 청산되는 일시적 행위”라고 강조했다.
투자 리스크를 국민과 국가에 전가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회사 관계자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반도체산업에 국가·국민이 함께 투자하고 과실을 공유할 수 있는 모델”이라며 “규제 개선으로 첨단산업 투자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