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합법과 불법 사이 오가는 예비역 장성들

입력 2025-12-24 17:22
수정 2025-12-25 00:12
“현역 때 인사권자였던 장성들이 기업으로 가서 이런저런 부탁을 하는데 흘려듣기 힘듭니다.”

육군본부에서 무기체계 도입 업무를 하는 한 영관급 장교는 방위산업체에 재취업한 예비역 장성들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외부에 공개하기 힘든 정보를 알려달라는 요청이 많기 때문이다. 같이 근무한 경험이 있고 현재 지휘관과도 엮여 있어 마냥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고충을 토로하는 장교가 늘고 있다. 굵직한 방위사업 발주가 이어지는 데다 무기 수출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방산 대기업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군 수뇌부와 소통할 예비역 장성을 경쟁적으로 뽑고 있다. 5년간 방산 기업행을 택한 군 출신 인사는 다섯 배로 증가했다.

장성 출신이 집중적으로 연락하는 곳은 차세대 무기체계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전력’ 계통이다. 육해공 본부의 기획관리참모부장,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 국방부 자원관리실장이 대표적이다. 이 부서에서 일하는 한 장교는 “사단장보다 10기수 이상 위인 전직 장성이 각종 정보를 파악하고 있어 불편할 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예비역 장성은 고문이란 직함을 달고 소속 기업을 위해 군의 무기 설계 자료를 입수하는 데 집중한다. 무기 규격, 사거리 같은 군사 기밀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면 사업부가 해체되고 고문 계약이 바로 끝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런저런 정보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다는 이유로 전직 장성의 기업행을 틀어막을 수는 없다. 성능 개량 사업,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등에선 군과 기업의 소통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탑승 편의성을 개선해 폴란드에서 호평받은 K-9 자주포 개량 사업은 군과 한화 측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무턱대고 민·군 접촉면을 늘리는 데 치중하다 보면 방산 비리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K방산이 수출산업으로 발전해 군사 기밀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법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내 방산 비리 제재는 개인 형사처벌(징역·벌금)과 법인의 입찰 자격 제한(최대 1년)이 고작이다. 불법 이익 환수와 징벌적 배상은 없다. 반면 미국은 방산 비리로 정부 예산에 손실을 입히면 손해액의 세 배를 물도록 한다.

결국 민·군 교류를 늘리면서 방산 비리를 근절하려면 군 출신의 방산 진입 규제를 완화하되 비리 처벌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군과 방산기업이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만 K방산도 고속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