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영·강민경도 입었다…2030 女 "진짜보다 가짜가 좋아요" [트렌드+]

입력 2025-12-30 09:00
수정 2025-12-30 09:14
공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싱글 여성 박모 씨는(38)는 최근 밍크·양털 제품 등 모피를 '끊었다'. 20대 시절부터 용돈만 모이면 옷을 사입던 박 씨는 겨울만 되면 화려한 모피 제품을 자주 사들이곤 했다. 하지만 모피 코트를 만드는 영상을 보고 잔인함에 충격을 받은 이후 모피 제품을 사지 않게 됐다. 길거리에서 만나 임시보호를 하다가 한 가족이 됐다는 고양이도 '비건 패션'으로 바뀌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박 씨처럼 모피의 화려한 느낌을 선호하지만 가치관 변화로 천연 모피를 구매하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다. 동물성 재료를 배제한 비건 열풍이 음식을 넘어 패션에도 불기 시작한 것이다. 가치소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2030세대에게 '동물 보호'나 '식물성 재료' 키워드가 매력적으로 다가가기 때문. 이 같은 비건 패션족들이 모피 대신 선택하는 제품이 '페이크 퍼'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에는 디자인과 완성도까지 갖춘 페이크 퍼가 유행을 타고 있다. 올해 페이크 퍼 트렌드는 캐주얼화. 기존엔 정장에 어울리는 모피 느낌의 퍼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엔 2030 여성 취향에 맞춘 통 넓은 데님이나 트레이닝(추리닝) 팬츠에 어울리는 캐주얼한 퍼가 선호되는 추세다.


다비치 강민경, 아이브 장원영·레이 등 패션으로 유명세를 타는 셀럽들도 천연 밍크 대신 페이크 퍼를 꺼내들었다. 강민경은 버클 디테일이 돋보이는 페이크 퍼 코트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에서 화제를 모았다. 짧은 기장의 하의와 롱부츠를 매치해 퍼 특유의 볼륨감은 살리면서 하체는 슬림하게 연출했다. 레이의 퍼 자켓 스타일링도 화제를 모았다. 퍼 자켓의 풍성한 실루엣 덕분에 얼굴이 작아 보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점이 특히 2030 여성들의 따라입고 싶어하는 심리를 자극했다.

과거 인조 모피나 인조 가죽, 인조 스웨이드는 진짜가 너무 비싸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싸구려 대체재였다면, 최근엔 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힘입어 진짜와 거의 구분하기 힘든 고급 인조 소재들이 대거 출현했다. 부드러움, 재질의 외관, 방한효과 등에서 실제 모피에 거의 육박한 이 가짜 모피들은 럭셔리 브랜드의 경우 몇백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퍼 기장 또한 다양해졌다. 일명 '뽀글이'로 불리는 짧은 퍼에서부터 길고 부드러운 퍼 등 다양한 질감의 퍼 아우터가 등장하며 선택지가 넓어졌다. 그레이, 브라운 등 색감도 다양해졌으며 의류 기장도 숏, 미디, 롱으로 세분화됐다. 집업, 버클, 토글, 하이넥 등 디테일을 잘 살린 제품들이 많아지면서 페이크 퍼가 하나의 패션 카테고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캐주얼라이징과 다양화를 통해 일상 속 깊숙이 파고들며 '페이크'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사그러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이랜드월드에서 운영하는 여성 SPA 브랜드 미쏘(MIXXO)는 겨울 시즌 페이크 퍼 아우터 상품군을 내놓으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 미쏘 페이크 퍼 아우터 상품군 매출은 올해 들어(지난 22일까지 기준) 전년 대비 약 7배(650%) 증가했다. 특히 ‘페이크퍼 후드 자켓'은 입고 후 3일 만에 초도물량을 완판했다. 인스타그램에선 단일 콘텐츠로는 드물게 200만 조회수를 넘기면서 바이럴되기도 했다. 퍼와 후드를 일체형으로 쉽게 코디할 수 있다는 점이 MZ 여성들의 수요를 사로잡았다.

미쏘 측은 페이크 퍼 자켓을 숏, 미디, 롱 등 다채로운 기장감으로 출시한 것뿐만 아니라 후드, 카라, 하이넥 등 각기 다른 디테일을 적용해 크게 선보인 것이 큰 인기 요인이라고 밝혔다. 미쏘 관계자는 “이랜드 생산 시스템을 공유하며 글로벌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한 상품 출시가 가능한 점이 미쏘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도 관련 신제품을 출시했다. 여성복 브랜드 ‘디 애퍼처’는 짧은 기장의 ‘페이크 퍼 재킷’을 선보였다. 꼬불거리는 질감에 밑단은 밴드로 캐주얼한 실루엣을 구현한 게 특징. 여성복 브랜드 ‘구호플러스’는 겨울 컬렉션을 통해 코트, 재킷, 베스트, 가방 등 다양한 아이템에 퍼 소재를 적용한 제품을 공개했다. 동시에 베이지 퍼 재킷에 브라운 밴딩 팬츠를 조합한 룩도 선보였다.


페이크 퍼는 명품 런웨이에서도 전성기를 맞았다. 리얼 퍼에 대한 윤리적 문제 제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잇따라 '퍼 프리(Fur-free)'를 선언한 것이다. 돌체앤가바나는 올해 가을·겨을(F/W) 패션쇼에서 브라운 컬러의 하프 코트부터 머플러, 모자, 가방까지 다양한 제품에 페이크 퍼를 적용한 스타일을 공개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