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물질로 인한 폐 손상 등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피해자 지원이 국가 주도로 전환된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국가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지 1년6개월 만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사회적 ‘참사’로 규정하고, 행정적 피해구제 체계를 국가 주도 배상체계로 전환하는 내용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을 확정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많이 늦었다. 모든 피해자와 유가족들께 머리 숙여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며 이 같은 소식을 알렸다.
기존에는 기업 분담금 2500억원과 정부 출연금 225억원을 토대로 구제급여 등이 지급됐는데 앞으로는 정부 주도 지원이 대폭 확대된다. 이를 위해 기후부 소속 피해구제위원회를 국무총리 소속 배상심의위원회로 개편한다. 2019~2021년 출연 이후 중단된 정부 출연은 내년 100억원을 시작으로 재개한다.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강화하기 위해 장기 소멸시효는 폐지한다. 이를 통해 피해자에게 치료비 지급은 물론 일실이익(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있었다고 예상되는 이익) 배상, 위자료 지급 등을 한다. 구제급여 등을 받은 피해자도 사안에 따라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는 배상액이 늘어날 가능성에 대비해 재원 확보에 주력한다. 정부 책임을 배상 재원 분담률에 반영하고, 책임 기업이 분담금 납부가 어려우면 해당 기업의 지배회사(지주사)도 보유 지분 한도에서 분담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기업의 분담금 미납 가능성을 고려해 우선 징수권 제도, 사업장 국외 이전 신고 제도, 기업 합병·양도 시 납부 의무 승계 규정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정부는 또 범부처 전담반(TF)을 구성해 피해자를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지원하기로 했다. 중·고교 진학 시 주거지 인접 학교 우선 배정, 대학 등록금 일부 지원, 국민취업지원제도를 비롯한 취업 지원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국가 주도 추모사업도 추진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1994년부터 판매된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폐 손상 등을 일으킨 사건으로, 2011년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를 통해 살균제와 폐 손상 간 인과관계가 최초로 확인됐다. 지난달 말 기준 5942명이 피해 사실을 공식 인정받았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