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업계에서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의 선구자’로 통한다. 서로 다른 두 항원에 결합해 단일 항체보다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이중항체는 과거 국내 바이오업계에선 생소한 개념이었다. 창업과 동시에 국내 업계에 이중항체 기술을 안착시킨 에이비엘바이오의 시선은 더 먼 곳을 향하고 있다. 기존 플랫폼의 적응증을 대폭 확장하고, 이중항체 기술을 다중항체 기술로 발전시켜 글로벌 빅파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구상이다. ◇근육·심장으로 플랫폼 영토 확장
이상훈 에이1비엘바이오 대표는 2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랩바디-B’를 뇌뿐만 아니라 근육과 심장 질환까지 아우르는 범용 플랫폼으로 진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뇌혈관장벽(BBB) 투과 플랫폼인 그랩바디-B는 2022년 프랑스 사노피와의 1조3000억원 규모 기술수출을 시작으로 올해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4조1000억원), 일라이릴리(3조8000억원)와의 거래까지 잇달아 성사시킨 에이비엘바이오의 핵심 자산이다. 이 대표는 “창업 초기만 해도 이중항체 개념에 반박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며 “글로벌 빅파마의 트렌드는 명확히 다중항체로 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확장에 대한 자신감의 배경에는 최근 글로벌 제약사 아이오니스와 함께 한 공동 연구 결과가 있다. 양사는 그랩바디-B에 siRNA(짧은 간섭 리보핵산)를 적용하는 쥐 실험을 진행해 왔다. 이 대표는 “BBB를 효율적으로 통과하려면 혈액 내 중성 환경(pH 7.0)에서는 수용체에 강하게 결합하고, 세포 내 산성 환경(pH 5.4)에서는 잘 떨어져야 한다”며 “일반 쥐가 아닌 인간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1 수용체(IGF1R)를 이식한 ‘아바타 쥐’ 모델 실험 결과 기존 대비 전달 효율이 6~8배까지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번 연구에서 siRNA를 붙인 그랩바디-B가 근육 조직에서 타깃 유전자에 대해 80% 이상의 높은 억제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연구는 그랩바디-B가 뇌를 넘어 근육, 지방 조직, 심장 등으로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는 확장성을 입증할 것으로 보인다”며 “내부적으로 신규 타깃을 선정해 근육 질환 등으로 프로젝트를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삼중항체·독자 임상으로 승부수에이비엘바이오는 다중항체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최근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 추세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로슈그룹의 제넨텍 등 글로벌 제약사들의 차세대 목표는 이미 다중항체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타우 단백질의 서로 다른 부위를 동시에 타깃으로 하는 이중항체에 그랩바디-B를 결합한 ‘삼중항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며 “여기에 CD98과 IGF1R을 동시에 잡는 ‘듀얼 바인딩’ 다중항체까지 더해 내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인 사업 전략의 변화도 예고했다. 과거 유망 기술을 조기에 기술수출하던 것과 달리 차세대 다중항체 기술은 임상 1상까지는 독자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전략이다. 기술의 숙성도를 높여 가치를 극대화한 뒤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차세대 기술만큼은 섣불리 기술수출하지 않고 임상 단계에서 가치를 증명할 것”이라며 “에이비엘바이오의 기술력이 세계 시장의 새로운 표준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강조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