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임대주택을 운영해 월세를 받는 해외기업이 우리나라에 진입하긴 어려워보입니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사진·60)은 최근 <한경닷컴>과 만나 "전세의 월세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외국 사례처럼 법인이 개인에게 월세를 제공하는 형태가 보편화되기엔 시기상조"라며 이렇게 말했다.
전세는 전 세계에 몇 없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발달한 제도로 꼽힌다. 보증금을 맡기고 거주한 뒤 계약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제도다. 무주택 서민이 적은 금액으로 집에 거주하다 목돈을 모아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주거 사다리 기능을 도맡았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활용해 집을 사고 세입자는 주거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신뢰'가 깨지면서 전세는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심형석 소장은 "우리나라는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이전부터 이상하리만치 신뢰가 잘 형성돼 있었다"며 "이를 기반으로 전세 제도가 잘 유지됐지만, 최근 전세 사기로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흐름은 통계로도 보인다.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1월까지 서울에서 거래된 전세는 28만5029건, 월세는 51만6359건으로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4.43%로 집계됐다. 10건 중 6건 이상이 월세란 얘기다.
전세 대신 월세를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최근 집값이 치솟았던 2019~2021년 전국적으로 전세 사기가 활개를 쳤다. 많은 세입자가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실수요자들은 위험이 큰 전세 대신 월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부동산 대책도 한몫했다. 문재인 전 정부는 2020년 7월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을 골자로 한 임대차법을 시행했다. 기존엔 2년에 한 번씩 돌아오던 전세 만료 시기는 계약갱신청구권으로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구조로 바뀌었다. 매물이 잠기게 된 것이다.
집주인들도 이전처럼 보증금을 받아 다른 부동산 자산에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고, 집을 보유한 데 따른 세금 부담도 커지면서 전세라는 목돈보다는 월세라는 현금 흐름을 만드는 상황이 유리해졌다. 세입자들도 급등하는 전셋값에 보증금을 무리하게 늘릴 수 없다 보니 가격이 오른 만큼 월세를 내는 상황이 많아졌다.
심 소장은 "전세의 월세화가 앞당겨진 원인은 '전세사기'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며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 역시 전세에 힘을 빼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들이 결국 월세화에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개인이 개인에게 월세를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대부분의 나라가 회사(법인)가 개인에게 월세를 준다. 우대빵연구소에 따르면 이웃나라 일본에선 다이토겐타쿠(대동건탁)이 임대주택을 130만가구 관리하고 있고 미국의 하인스, 영국에선 금융사가 임대주택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법인이 개인에게 월세를 주는 경우 수십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라운지, 업무룸 등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전세사기 등에서 자유롭다"고 소개했다. 다만 임대료가 일반보다 높을 수 있고 분양전환 의무 등이 없어 내 집 마련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장 현시점에 우리나라에 월세를 운영하는 법인들이 진입해 자리를 잡기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심 소장은 "월세 비중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전세가 남아 있는 구조에선 법인들이 국내로 진입하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이런 법인들이 국내에 진출해서 자리를 잡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월세가 우리 임대차 시장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다음은 월세 수익률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한다"며 "현재 서울만 놓고 보면 집값 대비 월세가 너무 낮은 편이라 법인이 들어와도 회사를 운영할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다. 집값이 안정된 상황에서 월세가 더 뛰어야 회사들이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당장 법인들이 운영할 수 있는 주택을 구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며 "현재 서울 집값이 안정되지 않는 이유는 충분한 공급이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서울 내 충분한 양의 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법인들의 진출은 당분간은 어렵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심형석 소장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부동산 리서치업체 부동산R114 이사로 재직했다. 영산대학교에서는 부교수로, 성결대학교에서는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는 미국 인터내셔널 아메리칸 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우대빵부동산 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다.
우주인. 집우(宇), 집주(宙), 사람인(人). 우리나라에서 집이 갖는 상징성은 남다릅니다. 생활과 휴식의 공간이 돼야 하는 집은, 어느 순간 재테크와 맞물려 손에 쥐지 못하면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끼게 만드는 것이 됐습니다. '이송렬의 우주인'을 통해 부동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사람을 통해 들어봅니다. [편집자주]
글=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영상=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