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벌어야 집 사죠"…오늘밤도 '2~3배 레버리지' 버튼 누른다

입력 2025-12-23 17:23
수정 2025-12-29 16:11
2021년 삼성전자 주식을 시작으로 투자에 입문한 은행원 장모씨(34)는 올해 들어 포트폴리오의 80% 이상을 나스닥100지수 3배 상장지수펀드(ETF) 등 미국 레버리지 상품으로 채웠다. 그는 “요새 집값이 뛰고 물가가 오르는 것을 보면 돈이 돈 같지 않고 일종의 게임머니 같다”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상승장에서 바짝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황 공부도 매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가 고수익을 위해 높은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감수하는 ‘단기 트레이더’로 변화하고 있다. 2020년대 초 동학개미 운동 당시 삼성전자 등 우량주를 사들인 뒤 ‘버티면 오른다’며 장기 투자했다면 최근에는 자산 가치 급등과 고물가의 불안 속에서 선택·전술적으로 투자하는 ‘전투개미’로 거듭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인 보유 비중이 절반 육박 2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미국 증시 상장 ETF(466억3000만달러) 중 레버리지·인버스 ETF 등 파생형 상품의 비중은 39%에 달했다. 일반적으로 레버리지 ETF는 기관투자가가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 이용하지만 한국에서는 개인투자자의 선호가 유독 높다.

개별 레버리지 ETF를 보면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투자자) 지분이 많게는 절반에 달할 정도다. 테슬라 하루 수익률의 두 배를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테슬라 불 2X ETF’(TSLL)의 지난달 말 기준 국내 투자자 보유 금액은 27억9947만달러를 기록했다. TSLL의 당시 시가총액(63억6000만달러)을 감안하면 한국인 보유 비중이 44%에 이른다.

나스닥100지수의 하루 수익률을 3배 추종하는 ‘프로셰어스 울트라프로 QQQ’(TQQQ)는 순자산이 30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최대 레버리지 ETF인데 한국인 지분이 11.2%다. 반도체지수의 하루 상승률을 3배 따르는 ‘디렉시온 세미컨덕터 불 3X’(SOXL)는 한국인 보유 금액(34억179만달러)이 순자산의 25%다.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치솟고 화폐 가치가 하락하자 눈높이가 높아진 개인투자자가 레버리지 ETF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근 1년간 SOXL로 수익률 2배를 기록했다는 민간연구원 직원 박모씨(47)는 “근로소득만으로는 계층 이동이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연간 기대수익률은 50~100%”라고 말했다.

고위험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노후 대비와 내 집 마련을 위해서라는 게 서학개미의 대체적 의견이다. 한국경제신문과 리서치 기업 오픈서베이가 주식 투자자 8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6%가 이같이 답했다.◇ 반짝 트렌드 아니라 구조적 변화증권가에서는 서학개미의 해외 레버리지 ETF 투자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해외 고위험 상품 투자가 단순히 일시적 유행에 따른 투자 트렌드라기보다 자산 가격 급등에 따른 불안과 높아진 기대수익률이 맞물린 결과라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서 이 같은 고위험 상품의 상장이 금지된 점도 서학개미의 레버리지 ETF 투자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3배 레버리지·인버스 ETF와 단일 종목 2배 레버리지 ETF 등은 국내 금융당국 규정(한 종목 비중 30% 제한, 구성 종목 최소 10개 이상)에 따라 상장할 수 없다.

금융당국은 투자자 보호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험 상품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개인이 많아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해외 파생상품 투자에 따른 개인 손실액은 2020년 이후 작년까지 매년 약 4000억원에 이른다. 당국은 우선 해외 레버리지 ETF를 신규로 거래하려는 일반 개인투자자는 1시간의 사전 교육을 이수해야만 주문이 가능하도록 했다.

규제 대신 현실적인 대체 투자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장기적으로는 집값 잡기와 물가 안정이 해결책이지만 합리적인 선에서 국내에 대체 상품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내 주식 장기 투자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도록 국내 증시의 체질을 빠르게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맹진규/심성미/류은혁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