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해외 파견'을 포상과 휴가의 잣대로 보는 시선

입력 2025-12-23 17:05
수정 2025-12-24 16:14
“풀장(수영장) 때문에 참 곤혹스럽습니다.”

올 7월 실리콘밸리 특파원으로 부임하기 전 만난 한 공공기관 인사가 한 말이다. 실리콘밸리에 파견한 직원의 사택에 딸린 풀장이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 공격 소재가 된다는 하소연이었다. 서울에서 이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공감을 표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그래도 세금으로 풀장 딸린 주택에 산다니…’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몇 개월 전 이야기를 떠올린 것은 지난 19일 외교부가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장면을 보고 나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재외공관 관련 질문을 하면서 “대사·영사관에 나가 있는 직원 중 외교부가 아니라 다른 부처 직원이 포상 비슷한 의미로 와 있는 경우도 꽤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재외공관 가서 1년 정도 푹 쉬면 좋겠다. 간 김에 애들 학교라도 보내면 좋겠다’는 사람도 꽤 있죠”라고 물었다. 미국만의 얘기는 아니고, 풀장을 직접 언급한 것도 아니지만, 해외 파견 공무원에 대한 국회의 인식과 대통령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실제 현실은 어떨까. 실리콘밸리만 해도 ‘풀장 없는 집’을 찾기 어렵다. 이곳에서 풀장은 부의 상징이라기보다 주택 시장의 구조적 결과물에 가깝다. 테크업계에서 성공한 기업가들이 하나둘 자택에 풀장을 갖추기 시작하자 이것이 유행처럼 번져 풀장이 없으면 집값이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같은 현실론을 차치하더라도 가장 아쉬운 점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과학기술 정보 전쟁의 현황을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받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 파견된 부처 공무원들은 현지 기술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우리 스타트업의 현지 안착을 돕느라 분초를 다툰다.

지난달 19일에는 오픈AI가 샌프란시스코에서 30여 개국 영사를 대상으로 비공개 기술 설명회를 열었다. 중국은 영사가 아니라 과학기술담당관을 보냈다. 미국의 인공지능(AI) 패권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맥락을 짚을 수 있는 실무자가 낫다는 판단에서다.

세계 각국은 과학기술 외교를 강화하는 추세다. 프랑스는 미국에 과학기술국이라는 독자 네트워크를 두고 20여 명의 요원이 핵심 기술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영국은 기술 특사와 과학기술주재관을 따로 두고 있고, 덴마크는 2019년부터 기술대사가 실리콘밸리에서 근무 중이다. 기술이 곧 안보이며, 그 규칙을 설정하는 데 참여해야 첨단 기술 공급망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절박함의 발로다. 한국의 과학기술 외교 담당자는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DC에 단 두 명뿐이다. 해외 파견 공무원들이 ‘호화 근무’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포상과 휴가라는 프레임으로 공무원을 비난하기에는 미국 내 과학기술 외교 현장이 너무 치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