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소비자에게는 연중 가장 큰 쇼핑 시즌이고, 유통업계에는 1년 매출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시기다. 그래서일까. 크리스마스는 때로는 관세 정책조차 비켜가게 만든다. 관세는 국가 정책의 영역이지만, 크리스마스 앞에서는 그 타이밍마저 조정되는 장면이 실제로 벌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크리스마스 장식 산업이다. 인공 크리스마스트리, 오너먼트, 장식용 조명 같은 제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된다. 오랫동안 중국은 크리스마스 장식품의 글로벌 생산기지 역할을 해왔고, 미국 시장 역시 중국산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이 구조 속에서 미·중 무역 갈등이 본격화되자, 크리스마스 장식업계는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관세는 갑자기 올라갔지만, 크리스마스 장식 산업은 대응할 시간이 없었다. 이 산업은 계절성이 극단적으로 강하다. 생산 계약은 상반기에 이뤄지고, 여름에는 이미 선적이 시작된다. 가을에 물건이 도착해 연말 판매를 준비하는 구조다. 관세가 발표됐을 때는 이미 물건이 만들어졌고, 배에 실려 있거나 항구에 도착한 상태였다. 피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관세를 그대로 떠안거나,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거나. 하지만 둘 다 쉽지 않았다. 관세를 떠안으면 수익이 사라지고, 가격을 올리면 연말 판매량이 급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일부 수입업체는 물량을 줄였고, 일부는 인력을 감축하거나 사업을 정리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품이 관세 정책 하나로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도 영향을 받았다. 평소보다 비싼 크리스마스트리, 가격이 오른 장식 세트는 단순한 물가 문제가 아니라 관세의 결과였다. 연말 분위기를 상징하는 상품들이 무역 갈등의 산물이 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흥미로운 결정이 내려졌다. 미국 정부가 일부 중국산 소비재에 대한 관세 부과 시점을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 이후로 조정한 것이다. 관세를 없앤 것은 아니었지만, 시점을 늦췄다. 이 결정은 크리스마스가 관세 정책조차 잠시 멈춰 세울 수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는 행정적 준비나 절차상의 이유가 언급됐지만, 시장에서는 그 배경을 다르게 봤다. 연말 쇼핑 시즌에 관세를 그대로 적용하면 소비자 가격이 급등하고, 소매 시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정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미국 소비의 정점이다. 이 시기에 가격 충격이 발생하면 정치적 부담도 커진다. 결국 관세는 예정대로 부과됐지만, 크리스마스를 정면으로 건드리지는 않았다.
이 사례는 관세가 결코 숫자와 세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관세는 산업 구조와 소비 심리, 정책의 타이밍까지 함께 움직인다. 특히 크리스마스처럼 상징성과 파급력이 큰 시기에는 관세 정책도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 장식품은 단순한 계절 상품이 아니다. 연말 소비 분위기, 가족 행사, 사회적 이벤트와 깊이 연결돼 있다. 이 시장이 흔들리면 단순히 한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관세 부과 시점을 조정한 것도 결국 이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관세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시사점을 준다. 관세는 원칙과 기준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시기와 맥락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계절성이 강한 산업이나 특정 시점에 소비가 집중되는 상품의 경우, 관세는 세금이 아니라 정책 메시지로 작동한다. 언제 부과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충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크리스마스는 매년 돌아오지만, 그 앞에서 관세 정책은 잠시 숨을 고른다. 관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만큼은 정면 충돌을 피하는 선택이 반복돼 왔다. 이는 크리스마스가 단순한 명절이 아니라, 정책 결정자에게도 무시하기 어려운 경제적·사회적 상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크리스마스 장식업계가 겪은 위기와 관세 부과 시점 조정 사례는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관세는 법과 제도의 문제지만, 그 영향은 매우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영역으로 흘러간다. 크리스마스트리 하나에 붙은 관세가 연말 소비 심리와 정책 판단까지 바꿀 수 있다는 점은, 관세 정책이 얼마나 섬세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크리스마스는 선물과 장식의 계절이지만, 동시에 관세 정책의 민감성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크리스마스는 관세조차 잠시 비켜가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변병준 관세사(조인관세사무소 대표 관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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