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을 가득 채운 술이나 찌개 냄비의 국물처럼 정점을 넘어서면 흘러넘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정점은 찰나의 순간일 텐데, 어리석게도 마지막까지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2025년 한 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끊임없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딴지를 걸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 취임 직후인 1월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두 번째 탈퇴를 선언한 데 이어 2월에는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를 통해 기후 공시 규칙에 대한 법적 방어를 중단했고, 6월에는 그린워싱 방지 규칙 초안마저 철회했습니다.
더불어 2025년 12월에는 행정명령을 통해 SEC에 ESG 및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관련 규정을 전면 재검토하고 철회할 것을 지시했는데, 이는 미국 내 ESG 관련 규제 인프라를 송두리째 폐기하겠다는 기세였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이 같은 정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을까요?
지난 11월 뉴욕시 회계감사관(의장)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관리하는 뉴욕시 연금 423억 달러에 대한 재입찰을 요구했습니다. 블랙록이 기후 문제 해결을 투자 우선순위에서 빼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또 미국 연방법원은 지난 12월 8일 신규 풍력발전사업에 대해 연방정부 허가 절차를 중단하도록 한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연방법원은 미국 내무부, 상무부, 환경보호청(EPA) 등이 육상·해상풍력사업에 필요한 신규 허가를 전면 중단하라는 지시를 이행하면서 충분한 근거와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역설적인 대목도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반ESG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 ESG 펀드 자산은 3670억 달러로, 2021년 피크 수준을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재생에너지 섹터의 경우 연초 대비 21% 상승하는 등 반등세가 확연합니다. 이는 트럼프 정부에서 정신없이 몰아친 반ESG 정책이 어느덧 정점에 다다른 것은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2025년의 묵은때를 씻어내고 새 희망을 써 나가야 하는 2026년. 〈한경ESG〉는 2개의 커버 스토리를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는 ‘재생에너지 저장의 미래’로,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 인프라의 발전으로 탄력을 받고 있는 재생에너지 시장을 전망했습니다. 이어 두 번째 ‘지자체의 지속가능 경영은’에서는 국내 지자체와 글로벌 녹색성장 도시를 비교해 주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지자체 지속가능 경영의 모범 답안을 구해봤습니다.
어쩌면 트럼프 정부의 반ESG 정책은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026년을 맞이하며 정점 이후를 준비하는 ‘지속가능성장 시즌 2’를 미리 그려봅니다.
글 한용섭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