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 외국인에만 술 판매"…'금주 국가' 사우디의 실험

입력 2025-12-21 21:02
수정 2025-12-21 21:03
주류가 엄격히 금지된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부유한 외국인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술 판매를 '조용히' 허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AP통신은 20일(현지시간) 지난해 1월 수도 리야드의 외교단지에 문을 연 비(非) 무슬림 외교관 전용 주류 매점이 최근 '프리미엄 거주권'(이크마)을 가진 비무슬림 외국인들에게도 주류를 팔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거주권은 사우디 정부가 의사·엔지니어·투자자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에게 발급하는 비자를 말한다.

이 매장이 주류 판매 대상을 확대한다는 공지는 없었다. 다만,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이 매장 입구에 길게 줄을 선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매장 외관에는 주류를 판매한다는 안내가 없고 휴대전화기와 카메라 반입이 불가하다. 이용 대상인지 확인하기 위한 신분 체크도 철저하게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외교관과 프리미엄 거주권을 가진 외국인 외에 사우디 시민이나 일반적인 외국인들은 여전히 사우디에서 술을 구매할 수 없는 상태다.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는 1951년 건국 군주 압둘라지즈 왕의 아들 미샤리 왕자가 만취해 영국 외교관을 총으로 쏴 살해한 이후 주류를 전면 금지해 왔다.

술을 마시려는 사우디인들은 바레인 등 주변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주류 밀수·불법 자가양조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 청년층 사이에선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찍어 올리거나 축제장에서 기분을 내려는 목적으로 무알코올 맥주 등의 음료를 즐기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

AP통신은 이번 주류 판매 확대가 극도로 보수적이었던 사우디의 자유화 실험 사례라고 설명했다. 사우디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경제·사회 개혁 계획인 '비전 2030'에 맞춰 종교·관습적 금기를 조금씩 허무는 중이다.

2018년 여성 운전 허용을 시작으로 대중가수 콘서트 개최, 공공장소에서 엄격한 남녀 분리의 완화, 영화 극장 개장, 관광비자 발급 등 최근 수년간 폐쇄적인 규제가 완화돼 왔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