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법과 노란봉투법…기업은 진퇴양난

입력 2025-12-21 17:15
수정 2025-12-22 00:10
올 한 해 기업인들과의 자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화두가 있다. 상법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이다. 법 개정 전·후 기업들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상법은 회사와 주주의 관계를, 노란봉투법은 회사와 노동자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인데, 각각의 영역에서 동시에 이해충돌과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상법은 올해 두 차례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했고 감사위원 분리선임 제도도 강화했으며,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다. 최근에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개정도 논의 중이다. 주주환원 확대와 기업 경영 투명성 제고로 국내 주식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함이지만, 경영진이 의사결정에 소극적으로 임해 장기 투자나 혁신이 어려워지고 경영권을 방어하기 힘들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노란봉투법은 또 어떤가. 올해 법 개정으로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개념이 확대되고 불법 쟁위행위의 손해배상 책임이 제한됐다. 노동계는 노동 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교섭의 사각지대가 해소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기업은 누가 사용자인지 어디까지 교섭 안건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얼마 전 입법예고된 시행령 개정안은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확대할 것으로 우려돼 기업이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두 법으로 인해 기업은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한쪽에서는 더 많은 배당과 주가 상승을 요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더 높은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한다. 어느 쪽을 우선 고려할지 진퇴양난 상황이다. 심지어 노란봉투법은 ‘사업경영상 결정’까지 노동쟁의 대상으로 삼아 경영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할 소지도 있다. 법 개정으로 주주와 노동자 모두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더 쉽게 경영진을 압박할 수 있게 됐다. 상법 개정은 주주 대표소송이나 배임죄 고발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었고, 노란봉투법은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책임을 완화해 쟁의행위의 문턱을 크게 낮췄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 위축이다. 기업의 이익은 배당이나 임금으로 분배되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미래 성장을 위해 투자한다. 우리 기업의 주주환원은 분석 대상 16개국 중 14위지만 투자는 두 번째로 높고, 성장 속도가 빠른 산업은 주주환원 확대보다 투자 같은 자본적 지출을 통한 수익성·성장성 제고가 더 바람직할 수 있다는 한국은행 보고서도 있다. 지금의 통상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대미(對美) 투자나 첨단 기술 투자에는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 주주와 노동자가 각자의 몫에 몰두하고 법이 이를 부추긴다면 기업은 도대체 무슨 돈으로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기업은 모든 것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결정하는 조직이다. 한동안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과감한 투자는 지금 당장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와 기업을 성장시키는 동력이 된 사례가 많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2차전지같이 지금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산업이 모두 그러했다. 이런 투자 결정에 단기적 이익을 선호하는 일부 주주나 노동자가 사사건건 관여한다면 과연 기업 성장이 가능할까. 과도한 주주권 행사나 노동 쟁의가 확대돼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훼손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주주이자 노동자인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상법과 노란봉투법이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사법 리스크를 키우는 ‘족쇄’가 되면 안 된다. 이제라도 기업 경영과 관련된 제도를 고칠 때는 더욱더 신중하고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