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22일 11:0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하필 인수합병(M&A) 진행 중에 드라마가 흥행하면서 정말 애를 먹었습니다. 새 회사로 전직하는 데 동의했던 직원들마저 드라마를 본 가족들이 대기업에 남아 있으라고 말린다며 막바지에 마음을 바꾸더군요.”
최근 만난 한 사모펀드(PEF) 경영진은 종영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언급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내 한 대기업의 사업 부문을 분할해 인수하는 방식의 카브아웃 M&A를 진행하던 중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기존 회사에 남겠다는 임직원들이 늘어 인력 확보에 애를 먹었다는 푸념이었다.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뒤 고생길을 걷는 극 중 김낙수 부장의 모습을 지켜본 가족들이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 있는 PEF보다 기존 회사에 남으라며 결사 반대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단순한 해프닝이었지만 업계에선 “카브아웃 거래의 민감한 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M&A 시장에선 대기업들의 비주력 자회사들을 PEF가 인수하는 '빅딜'들이 이어졌다. 한앤컴퍼니의 SK스페셜티 인수(2조7000억원)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롯데렌탈 인수(1조7000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릴스PE의 현대위아의 공작기계사업부문 인수, 어펄마캐피탈의 SK넥실리스 박막사업부 인수 등 수천억원대 중형 거래도 마무리됐다.
단순히 대주주만 변경되는 M&A는 물론 대기업 특정 사업부를 분할해 PEF가 영업양수도 방식으로 가져오는 거래도 쏟아졌다. 글랜우드PE의 LG화학 진단기기 사업부문 인수와 워터솔루션 사업부문 인수, VIG파트너스의 LG화학 에스테틱(미용기기) 사업부문 인수, 베인캐피탈이 진행 중인 HS효성 타이어사업부문 인수 등이 대표적이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 비주력 사업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려는 대기업과 미소진자금(드라이파우더)을 쏟아내려는 PEF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이같은 트렌드는 내년에도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특히 최근 각광받는 영업양수도 거래에선 단순히 주식이 오가는 바이아웃거래와 달리 인수 측이 세운 신설 특수목적회사(SPC)로 자산과 부채는 물론 사업권, 특허, 임직원 등을 옮겨가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임직원들의 전직 동의를 필수적으로 받아내야하는 데 PEF 사이에선 임직원들이 보수적인 기조로 돌아서면서 거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 때문에 PEF업계에선 거래 경험이 많거나 인지도가 알려져 있고, 투자 회수 과정에서 직원들과 성과를 나눈 경험을 쌓은 노하우 있는 PEF들이 주요 거래들을 독점하는 구도가 형성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안정적 대기업에서 재매각을 목표로 하는 PEF로 경영권이 바뀌면 일반적으로 노조 등의 격렬한 반발이 뒤따라왔다. 대기업 명함만 쥐면 임금과 복지 제도에서부터 대출 이자, 가족들의 인식, 결혼 상대까지 바뀐다는 '사회적 프리미엄'이 공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PEF 역사가 누적되고 성공 사례가 쌓이며 임직원들의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저금리 시기엔 대기업에서 주목받지 못하거나 성장에 제약이 있던 기업들의 임직원들이 오히려 PEF로 매각을 반기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PEF 경영 아래선 회사의 성과와 직원들의 보상이 연동되고, 연차 대신 실력에 따른 보상이 이어진다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롯데그룹이 2019년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을 각각 PEF인 MBK파트너스와 JKL파트너스에 매각하자 직원과 노조들이 오히려 환영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반응을 지켜본 롯데그룹이 인사 제도 등 전반적인 HR 제도를 재점검한 사례도 유명한 일화다.
이처럼 PEF들이 조금씩 쌓아온 인식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PEF 업계에서는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드라마의 메시지가 불황 국면과 맞물리며 임직원들의 선택을 보수적으로 되돌려놓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체감 경기 악화가 카브아웃 M&A의 최대 변수로 다시 ‘사람’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