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은 경멸을 낳는다’는 영미권 속담이 있다. 몇몇 실내악 팀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건조한 업무 관계에 머무는 팀이 적지 않다. 연습 시간 외에 마주치지 않기 위해 비행기에서 떨어져 앉거나 연주 여행 때 각각 다른 호텔에 투숙한다는 사중주단도 있다.
미국의 스타 듀오 첼리스트 요요 마(70)와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76)의 끈끈한 동행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반세기가 넘도록 호흡을 맞춰 온 두 대가가 서로에게 보내는 존경과 애정은 유별나다.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젊은 시절 아내와 요요를 만난 것”이라는 액스의 말에서 이들의 우정이 음악적 차원 이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요요 마와 액스는 자신들을 ‘나이 든 부부’ 같다고 표현한다. 두 사람의 실내악 인생은 서로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김영욱과 함께한 마-액스-김 트리오, 아이작 스턴·제이미 라레도와의 사중주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의 삼중주는 모두 이 듀오가 확장된 결과다. 26개 앨범을 냈고, 이 중 5개가 그래미상을 받았다.
이들의 인연은 1971년 줄리아드음악원 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액스는 당시 첼로 교수 레너드 로즈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반주를 맡았는데, 교수가 “대단한 열다섯 살 제자가 있다”고 자주 말했다. 액스는 요요 마의 카네기홀 데뷔 독주회에 찾아갔고, 어린 첼리스트의 실력에 압도된다. 빠르게 친해진 두 사람은 1973년 말버러페스티벌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고, 6년 뒤 정식 듀오 활동에 나선다. 요요 마는 자신의 많은 부분이 마니(액스의 애칭)와의 초창기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50여 년간 수없이 무대를 함께하면서도 한결같은 유대를 이어가는 동력은 무엇일까. 요요 마는 2년 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액스와의 협업을 “공화주의에 대한 헌신”으로 설명했다. 음악적 평등과 상호 보완이라는 이상 위에서 관계를 다졌다는 얘기다.
둘은 싸우는 법이 없다고 한다. 이들의 따뜻한 인품은 공연장의 테두리 안에 한정되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음악계가 멈춘 2020년, 요요 마와 액스는 음향 시스템을 갖춘 트럭을 타고 미국 버크셔 지역을 돌아다니며 ‘트럭 위 연주회’를 열었다. 병원, 소방서, 물류센터, 농장까지 트럭을 몰고 다녔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뮤직 포 푸드’를 지원하는 등 자선 공연에도 열정적이다.
2020년 여름, 두 친구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약 40년 만에 재녹음했다. 제목은 ‘눈물 속의 희망’. 베토벤이 첼로 소나타 3번 악보에 써놓은 ‘Inter lacrymas et luctus(슬픔과 눈물 가운데)’라는 표현에서 착안했다. 나폴레옹의 오스트리아 침공으로 고뇌에 빠져 있던 베토벤은 그럼에도 작품에 밝은 기운을 가득 심어뒀다. 팬데믹은 이 듀오가 또 다른 대형 프로젝트에 착수하는 계기가 됐다.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전곡과 더불어 교향곡 전곡을 삼중주 편성으로 녹음하는 ‘셋을 위한 베토벤’이다. 네 장의 앨범을 발매했고, 내년 여름 교향곡 7번과 피아노 삼중주 1번·2번 녹음이 예정돼 있다.
액스는 “요요 마와의 우정이 없었다면 나는 현재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자 다른 음악가가 됐을 것이고, 아마 모든 면에서 훨씬 못한 사람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로의 인간적 성장을 이끄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푸르러지는 우정. 이런 관계가 많아진다면 세상은 더 살 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두 노장의 이야기가 뜨겁게 다가오는 이유다.